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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병상, 수술, 의료진... '빅5' 병원 줄일 수 있는 건 다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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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며 전공의들이 집단 사표를 낸 지 5일로 보름이 됐다. 그사이 병원 풍경은 싹 바뀌었다. 병상과 수술을 줄이고, 환자를 받지 않는 등 대형병원들은 몸집을 줄이며 어떻게든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병원도 병원이지만, 최대 피해자는 역시 환자들이다.
이날 둘러본 이른바 빅5(서울아산·서울대·삼성서울·세브란스·서울성모) 병원은 전공의 파업이 전과 비교해 확실히 한산했다. 서울대병원은 평일 오후임에도 본관 로비를 오가는 방문객이 10명 안팎이었고, 보름 전 수납처 주변에 빼곡히 모여 있던 대기자도 찾을 수 없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진료를 보러 온 60대 정모씨도 “이렇게 한산한 건 처음 봐 어색할 정도”라고 했다.
환자는 감소했지만, 늘어난 것도 있다. 병원 곳곳에 멈춰 선 간이침대다. 방문객이 오가는 로비와 통로, 심지어 건물 밖에도 전원을 기다리며 침대에 누운 환자들이 수시로 눈에 띄었다.
서울대병원 응급실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암환자 A(71)씨는 이날 외래진료를 받던 중 통증을 호소해 응급실로 실려 내려왔다. 검사를 받고 2시간을 대기했는데, 병원 측은 그를 전원 조치했다. 그러곤 ‘병상 둘 자리가 없다’며 응급실 밖으로 내보내 구급차가 올 때까지 찬바람을 맞으며 누워 있어야 했다. 담요 두 겹과 겉옷 등으로 남편의 몸을 꼼꼼하게 감싸던 A씨의 아내는 “전립선암 4기고 이 병원을 다닌 지가 몇 년인데 응급실은 다른 곳으로 가라는 게 말이 되냐”며 울먹였다.
병상을 줄인 전공의 파업의 직격탄을 중증환자가 맞고 있는 셈이다. 빅5 병원 소속 간호사 B씨는 “기존 병상 절반 정도로 입원 환자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지난달까진 어느 정도 버텼는데, 전임의(펠로)들이 떠나고 교수들만 남는 3월이 진짜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병원에 환자도, 전공의도 없다 보니 할 일이 없어진 다른 의료진을 축소시키는 기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입원환자 수를 줄이면서 병동 운영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의사와 간호사 인력 비대칭으로 무급휴직 희망자를 받거나 환자 수가 많은 다른 부서로 파견 보내는 식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남은 의료진의 ‘업무 적체’도 일상이 됐다. 전공의가 맡던 일을 교수와 간호사가 떠안으면서 현장 혼란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예컨대 응급상황에서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등 갑작스럽게 뇌영상 검사가 필요할 때 그간 주치의가 처리하던 동의서를 이젠 교수가 직접 승인해야 하는데, 이들에게 외래, 당직, 수술 등 각종 업무가 몰리며 결재가 지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대형병원 간호사 이모(27)씨는 “최근 응급 검사 승인을 기다리다 지친 보호자가 교수 외래로 직접 내려가 진료 도중에 동의서를 받아온 적도 있다”면서 “파스, 영양제 등 비교적 소소한 처방도 교수 승인이 필요해 불만 민원이 폭주하는 중”이라고 토로했다.
교수들도 연일 고강도 근무를 견뎌내느라 한계 상황에 부닥쳤다. 서울 대형병원 내과 C교수는 “당직을 서면 기본이 24시간, 필수과는 이틀까지 잠을 잘 수 없는데 이번 달엔 사흘에 한 번꼴로 당직이 돌아온다”며 “일주일에 두 번씩 외래진료도 봐야 해 포럼 참석 등 연구 쪽은 포기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의료진이 부족해지자 가벼운 증상에도 종합병원 응급실부터 찾고 보는 과잉 의존 행태는 다소 개선됐다고 한다. 서울의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D교수는 “이전엔 3차병원 응급실도 경증 교통사고 환자들로 꽉 들어찼는데, 진료가 불가능해진 이들이 다른 의원을 찾으면서 치료가 시급한 중증 응급환자 위주가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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