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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최초 간호병단 흑인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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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 흑인 여성 간호사는 남북전쟁 당시 북군 간호사로 활약한 수지 킹 테일러(Susie King Taylor, 1848~1912)다. 조지아주 한 농장 노예 출신으로 정식 간호교육도 받지 못했던 그는 북군 흑인 부상병들을 무보수로 간호, 전후 흑인군단의 일원으로 인정받았고 재건시대에 흑인 학교를 세워 교육자로 활약했다.
흑백분리 차별시대 군대 내 인종차별은 전투병보다 맨살과 체액이 닿을 수 있는 간호병과에서 훨씬 심했다. 1차대전 중이던 1917년, 미 육군 간호사 조달기관이던 적십자사는 흑인 간호병 지원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미국간호사협회(ANA) 회원이 아니라는 게 명분이었다. 18년 독감으로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유색인종간호사협회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말 그대로 자원봉사였지 정식 간호병은 아니었다. 2차대전 발발 후에도 육군간호사단은 “유색인종 간호사 임용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흑인 지원자들을 거부하다가 41년에야 흑인 간호사 56명을 최초로 육군간호사단에 받아들였다. 그들은 유색인종부대에 배속되거나 전시 독일군 포로 수용시설에서 독일군을 간호해야 했고, 백인 상급자의 묵인하에 나치 포로들의 인종적 모욕까지 감수해야 했다. 42~46년 나치 포로 37만여 명이 미국 내 600여 개 수용소에 수감돼 강제노역을 했다.
미군 중 가장 늦게 흑인 간호사를 받아들인 건 해군으로, 루스벨트 당시 대통령이 ‘간호병 징병제‘ 도입 방침을 밝힌 45년 1월 연두교서 직후였다. 그해 3월 8일 필리스 메이 데일리(Phyllis Mae Dailey)가 해군 최초 흑인 간호병단 장교로 임관했다. 그는 뉴욕 링컨간호대와 컬럼비아대 처치스 칼리지에서 공중보건학을 전공했고, 종전 직후까지 복무했다. 종전 당시 해군 간호병단의 흑인 간호사는 그를 포함, 단 4명에 불과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48년 7월 행정명령으로 미군 내 인종 분리차별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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