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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는 일제·미군정 덕에 크고 지역주의·엘리트주의로 폭발했다

입력
2024.03.01 20: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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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야구의 나라'

1923년 일본 전국 고교 야구대회인 고시엔 8강에 오른 한국의 휘문고보 야구부. ⓒ 아사히스포츠

1923년 일본 전국 고교 야구대회인 고시엔 8강에 오른 한국의 휘문고보 야구부. ⓒ 아사히스포츠

'한국의 휘문에게 배워라.'

1923년 일본의 한 신문은 이런 내용의 기사를 지면에 실었다. 한국의 휘문고 야구부가 기술적 열세를 투지로 극복해 일본 전국 고교 야구대회 8강에 진출한 것을 주목했다. 당시 야구는 '귀족 스포츠'였다. 글러브와 배트 구입에 돈이 많이 들었다. 휘문고는 어떻게 야구부를 키웠을까. 야구부를 창단한 건 한일합방조약을 지지해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친일 자본가 민영휘. 일제는 야구를 내선일체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썼다.

책 '야구의 나라'는 한국 야구가 성장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준다. 야구가 축구를 제치고 '국민 스포츠'가 된 데는 일제, 미군정 등의 영향이 컸다. 인천상업고는 야구를 국기처럼 여긴 미군과의 교류로 야구 명문이 됐다.

이종성 지음·틈새책방 발행·328쪽·1만8,000원

이종성 지음·틈새책방 발행·328쪽·1만8,000원

스포츠사회학자인 저자 이종성씨는 야구가 한국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배경으로 엘리트주의와 지역주의를 꼽는다. 야구 대중화는 경기고, 경복고, 배재고, 전주고, 광주제일고와 선린상고, 군산상고 등 지역 명문고들의 고교 야구 흥행에서 시작됐다. 정·재계로 진출한 이 학교 출신들이 고교 야구를 적극 육성했고 언론들이 바람몰이를 했다. 1974년 고교평준화정책이 시행된 뒤 지역 엘리트들은 야구로 자긍심을 키웠다.

야구 종주국도 아닌데 아마추어 리그를 향한 과거의 열기는 지금 돌아보면 미스터리다. 그 실마리를 책은 기득권 세력의 '야구 동맹'으로 솔깃하게 풀어낸다. 손흥민과 이강인 등 해외 축구 스타들의 활약을 지켜본 Z세대의 사회 진출로 인한 스포츠 지형 변화에 대한 전망도 흥미롭게 담겼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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