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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령 투표, ‘답정너’ 선거, 총리 심층면접… 동남아의 ‘천차만별’ 지도자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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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한국일보의 세 번째 베트남 특파원으로 부임한 허경주 특파원이 ‘아세안 속으로’를 통해 혼자 알고 넘어가기 아까운 동남아시아 각국 사회·생활상을 소개합니다. 거리는 가깝지만 의외로 잘 몰랐던 아세안 10개국 이야기, 격주 금요일마다 함께하세요!
‘동남아시아’라는 단어를 들으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가성비가 좋은 휴양지’이고, 다른 이에겐 ‘인건비가 저렴한 제조업의 메카’일 것이다. ‘경제 급성장’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정치 체제’를 물어보면 “민주주의가 억압받는 곳”이라거나 “개인의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힘든 암흑의 지역” 또는 “독재 국가”라는 답변이 다수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이라는 이름 아래 한데 모였지만, 10개 국가는 인종부터 언어, 문화, 종교, 경제 규모까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정치 체제와 국가수반을 뽑는 선거 절차, 분위기도 각양각색이다. ‘10국(國) 10색(色)’인 동남아의 선거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민주주의 국가.’ 인구 2억8,000만 명인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특색을 표현하는 수식어다. 아세안 회원국 10곳 가운데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한 2개국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5년마다 돌아오는 대선일에는 유권자 2억 명이 ‘소중한 한 표’ 행사를 위해 투표소로 향한다.
엄청난 인구 수만큼 선거 규모도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달 14일 대선 때엔 인도네시아 1만7,000개 섬 중 사람이 거주하는 7,000곳에 투표소 82만 개가 설치됐다. 투표관리원도 570만 명에 달했다. 자동차가 접근하지 못하는 산간 마을과 외딴섬 곳곳으로 투표함·투표용지를 전달하기 위해 말과 소달구지까지 동원됐다.
대선 당일에 총선과 지방선거가 함께 실시되는 것도 특징이다. 사전 투표가 있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달리 오직 하루, 단 6시간(오전 7시~오후 1시) 안에 주요 선거를 모조리 치른다. 투표관리원과 경찰은 투표소 준비와 관리, 개·검표 작업을 위해 선거 전후로 며칠 밤을 새우는 등 격무에 시달리기 일쑤다. ‘투표 관리원 몇 명이 사망했나’가 선거 때마다 주요 관심사로 떠오를 정도다. 2019년 선거 직후에는 894명이, 올해는 선거 약 2주 후인 지난달 27일까지 총 114명이 각각 목숨을 잃었다.
2억 명이 직접 투표를 하는 탓에 개표에만 한 달 이상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는 표본으로 지정된 투표소 투표함을 여론조사 기관이 우선 개봉해 각 후보의 득표를 집계하는 방식으로 미리 결과를 예측한다.
필리핀도 직접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다. 다만 대통령 후보 한 사람에게만 표를 던지면 ‘러닝메이트’인 부통령도 자동 결정되는 미국이나 인도네시아와 달리, 대통령과 부통령이 각각 별개 선거를 거쳐 선출된다. 서로 다른 정당에서 출마했는데 선거 후 한배를 타거나 이해관계에 따라 동맹을 맺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입헌군주제·의원내각제 국가인 태국, 캄보디아, 말레이시아에서는 총리가 실권을 거머쥔다. 총선에서 국민 지지를 많이 얻은 정당이 권력에 가까워지는 구조다.
그러나 ‘총선 승리=집권’ 공식이 항상 성립하는 건 아니다. 예컨대 지난해 5월 태국 총선에서 국민 다수는 개혁·진보 성향 정당인 전진당(MFP)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전진당은 하원 최다 의석을 차지하고도 정권을 잡지 못했다. 피타 림짜른랏(43) 당시 당대표가 총리에 오르려면 상원(249명)·하원(500명) 중 과반(375명) 표를 얻어야 했는데, 전진당의 ‘군주제·군부 개혁’ 공약을 불편해하던 상원이 어깃장을 놓은 탓이다. 태국 상원은 군부가 장악하고 있다. 정치권의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에 선거에서 표출된 유권자 민심이 왜곡된 셈이다.
반면 캄보디아 총선은 사실상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다. 입헌군주제·의원내각제를 도입한 나라들 중에서 가장 예측 가능한 선거로 꼽힌다. 언제나 집권 캄보디아인민당(CPP)의 압승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총선에서도 CPP가 전체 의석 125개 중 120석을 싹쓸이했다. 나머지 5석도 친정부 성향 정당이 차지했다. 투표를 앞두고 야당 인사 출마를 원천 봉쇄하고, 정부에 각을 세우는 독립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등 반대 세력의 손발을 묶었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패턴이다.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선거 후, 38년간 집권해 온 ‘아시아의 독재자’ 훈센(72) 총리는 권좌를 아들 훈마넷(45)에게 넘겼다. 부자간 권력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를 이용한 꼴이다.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대통령을 직접 투표로 뽑는다. 다만 이렇게 선출된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국가 통합을 추진하는 상징적 인물일 뿐, 실질적으로는 총리가 정치·행정 등 각 분야에서 최고 권한을 행사한다. 국민의 ‘표심’이 국가 운영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진 않는 셈이다.
실권자인 총리는 1965년 독립 후 줄곧 집권해 온 인민행동당(PAP)에서 나왔다. 임기가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아 현직 총리가 후임자를 물색하는 형식으로 권력이 승계돼 왔다.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리콴유(1959~1990년 재임) 초대 총리부터 고촉통(1990~2004년), 리콴유의 장남 리셴룽(2004년~현재)에 이르기까지, 65년간 단 3명만 총리에 오르는 등 웬만해선 최고 권력자 교체가 드물다.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최상위권인 강소국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선 ‘리더십의 연속성·안정성’이 필요하다는 게 싱가포르 정부가 내세우는 이유다.
후계자 선정 방식도 독특하다. 일반적으로 영국, 일본 등 다른 의원내각제 국가는 집권당 내에서 후보끼리 경선을 해 총리를 선출하지만, 싱가포르에서는 당 지도부 내부 논의로 사실상 확정된다. 올해로 21년째 집권 중인 리셴룽(72) 총리 역시 2022년 3주간 장관급 인사 19명을 심층 인터뷰한 끝에 로런스 웡(50) 당시 재무장관(현 부총리)을 후임으로 낙점했다.
공산당 일당 체제인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이 국가 리더를 뽑는 절차는 이웃 나라들과는 사뭇 다르다. 5년마다 ‘최대 정치 행사’로 불리는 공산당 전국인민대표회의(전대)를 열고 차기 지도부를 선출한다.
우선 당원 500만 명을 대표하는 대의원 약 1,500명이 향후 5년간 당 주요 사안을 결정할 중앙집행위원회(200명)를 선정한다. 이후 중앙위가 다시 20명 안팎의 ‘정치국원’을 추려내고, 정치국 위원이 내부에서 공산당 서열 1위인 당 총비서(서기장)를 뽑는다.
서기장이 결정되면 권력 서열 2위이자 한국의 대통령과 비슷한 역할을 맡는 국가주석(외교·국방), 국무총리(3위·행정), 국회의장(4위·입법)의 윤곽도 드러나게 된다. 당 서기장이 2~4위에 대한 임명제안권을 갖고 있어 그의 결심에 따라 ‘빅4’ 라인업이 정해지는 게 특징이다.
지난 13차례 전대에서 뽑힌 서기장은 모두 ‘중·북부’ 출신의 ‘남성’이었다. 과거 미국 군정이 지배한 남부 출신 혹은 여성이 당 서기장에 오른 전례는 없다. 현재 서열 1위인 응우옌푸쫑(79) 서기장은 2011년 권력을 잡은 뒤 3연임 중이다. 베트남 전쟁 이후 최장수 지도자다.
베트남과 국경을 맞댄 라오스도 공산당 일당 독재 국가다. 마찬가지로 당이 전대를 통해 권력 서열 1위 서기장을 선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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