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비 경쟁의 디딤돌이 된 핵겨울 공포

입력
2024.03.01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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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미 국방부 ‘핵겨울 보고서’- 1

1990년대 미국 반핵의료단체(MCANW)가 차량에 쌓인 눈 위에 적은 홍보 문구. "핵겨울을 막기 위해 MCANW와 연대해달라." 위키미디어 커먼스

1990년대 미국 반핵의료단체(MCANW)가 차량에 쌓인 눈 위에 적은 홍보 문구. "핵겨울을 막기 위해 MCANW와 연대해달라." 위키미디어 커먼스


냉전시대 핵전쟁 공포는 다량 핵탄두의 동시다발적 폭발로 인한 방사능 피해, 도시와 숲이 잿더미가 되리라는 불폭풍 등 주로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피해에 대한 공포였다. 과학자들조차 거의 주목하지 않던 핵전쟁의 간접적 장기적 영향에 대한 첫 연구 가설이 1983년 가을 처음 제기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R&D어소시에이츠의 물리학자 리처드 터코(Richard Turco), 미항공우주국 에임스연구센터의 오웬 툰(Owen Toon)과 토머스 애커먼(Thomas Ackerman)과 제임스 폴락(James Pollack), 코넬대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 등 논문 저자 다섯 명의 성 머릿글자를 따 ‘TTAPS 연구’라 불리는, 이른바 ‘핵겨울(Nuclear Winter)’ 가설이었다.

골자는 5,000메가톤 규모의 핵탄두만 폭발해도 광역의 도시와 숲이 불타며 막대한 양의 연기와 그을음을 분출하고, 그게 열기로 상승해 편서풍 등을 타고 위도 30~60도 대기권에 거대한 에어로졸 벨트를 형성해 장기간 태양 빛을 차단함으로써 지표 온도를 수주 내 섭씨 11~22도 떨어뜨릴 것이고, 짙은 어둠과 가혹한 냉기는 고선량의 방사선과 함께 식물 광합성을 방해해 지구 동식물 생태계를 파멸적으로 훼손시켜 기아와 질병으로만 인류는 전쟁 전보다 몇 분의 1로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 가설을 두고 과학계가 격론을 벌이던 85년 3월 1일, 미 국방부가 공식 보고서 ‘기후에 대한 핵전쟁의 잠재적 영향’을 발표했다. 핵전쟁의 기후 환경 영향을 정량화할 수는 없지만 심각한 기후 냉각 효과로 인류 생존에 상당한 파괴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게 요지였다. 국방부는 기존 핵탄두는 전쟁 억지를 위해 계속 보유하되 당시 레이건 행정부가 거세게 밀던 핵미사일 위성 요격 전략방위구상 즉 ‘스타워즈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부각했다.(계속)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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