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세의 노을이 가장 오래 머무는 나라

입력
2024.02.2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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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리히텐슈타인 여성 참정권


2017년 창단한 리히텐슈타인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2021년 4월 룩셈부르크 대표팀과 가진 A매치 첫 친선경기에서 1 대 2로 패했다. UEFA 사진

2017년 창단한 리히텐슈타인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2021년 4월 룩셈부르크 대표팀과 가진 A매치 첫 친선경기에서 1 대 2로 패했다. UEFA 사진

바티칸시국과 모나코, 오세아니아 나우루와 투발루, 이탈리아 북동부 내륙의 산마리노에 이어 세계에서 6번째로 작은 유럽 국가 리히텐슈타인은 군주정과 대의민주정, 직접민주정을 함께 채택한 드문 나라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영지였다가 18세기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통치하는 공국이 됐고 19세기 독일연방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제후국 지위를 거쳐 1차대전 직후 독립과 함께 1921년 헌법을 제정하고도 국민 다수의 절대적인 지지 위에 세습 왕정 체제를 유지해왔고, 현재 공식 국명도 리히텐슈타인 공국이다. 의회민주주의가 작동하지만, 주요 법률과 조약은 시민 발의에 따른 국민투표로 정한다. 2021년 기준 인구가 3만9,000명에 불과해 국민투표는 거의 매년 한두 차례씩 투표가 치러진다.

시민 절대다수가 가톨릭을 신봉하고 봉건제의 정치적 유습을 전통처럼 고수해온 만큼 리히텐슈타인은 서유럽의 섬이라 할 만큼 보수적인 국가다. 2011년 국왕은 낙태 자유화 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만약 ‘찬성’이 다수일 경우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선언, 투표 자체를 무효화했고, 지금도 임신중단은 불법이다. 국왕에겐 의회 및 정부 해산권과 국민투표 결과 거부권이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유럽은 물론이고 일부 무슬림 국가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늦은 1984년 7월에야 만 20세 이상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여성 참정권 개정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 즉 남성 성인 유권자 투표 결과 찬성 51.3% 반대 48.7%의 근소한 차이였고, 71년과 73년 2차례 부결 끝에 이룬 결실이었다. 70년 10월 의회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여성 참정권 헌법 개정안을 두고 71년 2월 28일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남성)유권자 51%가 그들의 정치적 특권을 나누길 거부했고, 당시 여성-시민단체의 항의 플래카드에는 “당신들의 정력(Virility)이 의심스럽다”는 문구도 있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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