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29일 의료대란 진짜 고비 온다… 전임의 이탈 조짐에 인턴 포기 속출

입력
2024.02.25 19:30
수정
2024.02.25 21:55
1면
구독

전임의 계약 종료 29일
예비 인턴도 수련 포기
의대 교수들 중재 시도

25일 오후 민간 응급환자에게도 개방된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응급실로 환자들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오후 민간 응급환자에게도 개방된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응급실로 환자들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의과대학 입학정원 2,000명 확대에 반발해 무더기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인턴·레지던트)에 이어 전임의와 예비 인턴까지 이달 말 실력 행사에 나설 것으로 보여 의료시스템 붕괴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의대 교수들이 중재를 시도하고 의정 모두 대화를 통한 해결에는 공감했지만 워낙 갈등의 골이 깊어 단시간에 돌파구를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의료 대란 분수령 29일, 의료시스템 마비되나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 일주일을 맞은 25일 의료계에선 이번 의료대란의 진짜 고비는 오는 29일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의료 현장에 남은 교수와 전임의가 전공의 업무까지 떠안아 과부하 상태인 데다 전임의들까지 집단 이탈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펠로'라고 불리는 전임의는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 자격증을 딴 뒤 병원에 남아 세부 분야를 공부하는 의사들이다. 전임의는 통상 2월 말을 기준으로 병원과 1년 단위 계약을 하는데, 상당수가 재계약을 안 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계약이 종료되면 정부가 발령한 '사직서 수리 금지명령' '진료유지명령'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한 종합병원 전임의는 "전공의들을 지지하기에 병원을 지켰지만 의사를 지탄하는 여론과 정부 대응에 힘이 빠진다"며 "교수 임용을 앞뒀거나 교수가 만류하는 일부 사례 외에 많은 전임의가 병원을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임의는 입원 지시, 단독 진료 등이 가능해 전공의 3명 몫을 한다"며 "전임의까지 빠지면 의료시스템이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20일에도 81개 수련병원 전임의들은 성명을 통해 "의료 정책에 대한 제언이 묵살되고 국민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매도되는 현재 상황에서는 의업을 이어갈 수 없다"며 집단행동을 암시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대하는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이어진 23일 오후 대전의 한 종합병원에서 의료진이 응급실을 나서고 있다. 대전=뉴스1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대하는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이어진 23일 오후 대전의 한 종합병원에서 의료진이 응급실을 나서고 있다. 대전=뉴스1

이달 의대를 졸업하고 다음 달부터 수련을 해야 하는 예비 인턴들의 '임용 포기'도 속출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에선 올해 인턴으로 채용된 180여 명 중 80~90%가 수련계약을 맺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남대병원은 신규 인턴 100여 명 중 80여 명, 부산대병원은 50여 명이 임용 포기서를 냈고, 조선대병원과 순천향대천안병원, 충남대병원, 전북대병원, 조선대병원 등에서도 인턴 대다수가 수련 포기 의사를 밝혔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도제식으로 이뤄지는 의료교육 특성상 한 기수 연차가 빠지면 현행 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가뜩이나 의사가 부족한데 인턴 공백을 메울 대안도 없다"고 우려했다.

의대 교수들 중재 통할까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자 의대생과 전공의의 스승이자 선배인 의대 교수들이 중재에 나섰다. 지난 23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과 회동한 정진행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2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호소문을 올려 "정부가 이 사태의 합리적인 해결을 원하고 있으며 향후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최적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며 "의대 정원 조정 및 필수의료 체계 유지와 관련된 제반 사항들을 정부와 교수가 함께 협의할 수 있는 정기적인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전날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도 "정부뿐 아니라 의사단체 등과도 대화하며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이라며 정부에 의료인력 추계를 위한 협의체 구성을,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의료 현장 복귀를 요청하는 중재안을 내놨다.

각 대학들이 교육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의대 증원을 추진했다며 자성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전국 40개 의대는 지난해 11월 복지부가 실시한 수요조사에서 2025학년도에 최소 2,151명 증원을 원한다고 답했으나 최근 "350명 정도가 적당하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전국 10개 거점 국립대 교수회장들로 구성된 거점국립대교수회연합회 회장단은 25일 입장문에서 "일부 대학 책임자와 전문가들은 정부에 잘못되고 과장된 정보를 제공한 것에 사과해야 한다"며 "정부와 의료단체는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의료 정책 수립에 협력하라"고 촉구했다.

조규홍(맨 왼쪽) 보건복지부 장관이 25일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복지부 제공

조규홍(맨 왼쪽) 보건복지부 장관이 25일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복지부 제공

중재가 통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2,000명 증원 규모를 놓고 정부는 "타협 불가"를, 의사단체는 재조정도 아닌 "전면 백지화"를 각각 주장하고 있어 접점을 찾기가 난망한 상황이다. 대한의사협회는 25일 전국대표자 회의를 열어 의대 증원 저지 결의문을 채택하고 "적법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끝까지 저항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도 대화 창구는 열어놨지만 위법 행위에는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법무부는 환자 구제를 위해 복지부에 검사 1명을 파견했고, 일선 검찰청도 경찰과 협력해 사법 처리에 대비하고 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집단행동에도 묵묵히 헌신하는 의료진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국민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표향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