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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파업 후 첫 주말... 퇴짜만 놓는 '위기의 응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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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이 없어서 그냥 소독만 하고 나왔어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남편을 부축해 나오던 임모(76)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임씨의 남편은 얼마 전 담도암 수술을 받았는데, 연결해 둔 배관이 주말 새 빠져버려 충남 서산에서 급히 달려온 길이었다. 그러나 관을 다시 연결하는 수술이나 치료는커녕 환부 소독 등 간단한 처치만 받고 병상을 비워야 했다. 임씨는 “관을 아직 꽂지 못한 채로 일단 집에 간다”며 한숨을 쉬었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엿새가 지났다. 전공의 전면 파업 후 맞은 첫 주말, 환자와 보호자들이 체감한 의료 공백 여파는 더 거셌다. 외래진료가 없는 탓에 서울 주요 병원 응급실마다 뛰어 들어온 환자로 넘쳐났지만, 손사래만 치는 병원 측 통보에 2차 병원 등 다른 병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날 찾은 서울 종합병원 곳곳에선 ‘간단한 처치만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고 돌아가는 환자들이 실시간 눈에 띄었다. 동작구 보라매병원에서 만난 윤모씨(79)는 낙상사고로 턱이 찢어진 손녀를 데리고 응급실에 왔으나 응급처치가 고작이었다. 윤씨는 “벌어진 상처를 봉합해 줄 의사가 없어 다른 데로 가라 하더라”며 “일요일에 문을 연 병원이 없어 응급실을 방문한 건데 정말 미치겠다”고 하소연했다.
응급실에서 퇴짜를 맞은 환자와 보호자는 갈 곳을 직접 수소문해야 했다. 그러나 이날은 대부분 병원이 휴진이라 휴대폰을 붙들고 발만 동동 굴렀다. 육종암 말기 환자인 남편이 전날 각혈 증상을 보여 보라매병원 응급실을 찾은 송모(67)씨는 “응급실에 최대 24시간까지만 머무를 수 있고, 입원도 안 된다고 해 다른 병원을 섭외하려는데 연락 닿는 곳이 없다”면서 “수술과 진료를 모두 받은 병원에서 입원까지 연결이 안 된 건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이날 낮 12시 기준 이른바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의 일반응급실 종합상황판에는 모두 빨간색 불(사용 가능 병상 수 50% 미만)이 들어왔다. 삼육서울병원, 보라매병원 등 2차 병원 응급실 역시 경고등이 켜진 곳이 부지기수였다. 2차 병원인 영등포구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실 앞에도 ‘의료진 부족으로 진료대기가 길어질 수 있으니 가벼운 증상은 인근 병의원을 이용해 달라’는 공지가 붙었다.
연이은 ‘진료 거부’로 기본적 처치조차 받지 못하고 한참을 길 위에서 헤맨 환자도 있었다. 강북구에 사는 이모(81)씨는 이날 오전 당뇨병 환자인 남편과 함께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아 한 시간 가까이 구급차를 타고 떠돌았다고 한다. 이씨는 “평소 투석 치료를 받는 남편의 혈관이 오전 8시쯤 갑자기 터져 구급차를 불렀는데, 종합병원 2곳에서 거절당했다”며 “겨우겨우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오긴 했지만 두 시간 동안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상태가 나빠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날이 갈수록 의료현장이 마비 상태로 치달으면서 ‘3월 대란’설도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를 졸업하고 다음 달 전공의 수련을 위해 병원에 들어와야 할 신규 인턴들이 전국 각지 병원에서 속속 임용 포기 선언을 하고 있다. 여기에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메워왔던 전임의(펠로)가 이달 말 재계약을 갱신하지 않으며 병원을 이탈할 가능성, 수련 종료를 앞둔 4년 차 레지던트들이 전문의 취득 후 병원을 떠날 가능성도 불거진 상황이다.
최근엔 현장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일부 교수들마저 “정부가 전공의 처벌을 강행하면 (집단행동에) 동참하겠다”고 경고하는 등 강경 대응이 의사집단 전체로 번질 조짐도 뚜렷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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