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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대통령’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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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장래희망은 과학자였다. 16일 대전에서 열린 '미래 과학자와의 대화'에서 "어릴 적 꿈은 수학자나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우리 과학자들의 꿈과 도전을 가장 잘 뒷받침하는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포부도 덧붙였다.
말뿐 아니라 실제로 이날 민생토론회에선 "국가연구개발에 참여하는 전일제 이공계 대학원생에게 석사는 매월 80만 원, 박사는 110만 원을 빠짐없이 지원하겠다"는 내용도 발표했다. 이어 당선 후 세 번째 방문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에선 "실패를 두려워 말고 과감하게 도전해 달라"는 졸업식 축사까지 건넸다. "여러분이 너무 자랑스럽다"며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확대할 것"이라고도 약속했다.
그러나 국가 최고지도자의 공언에도 과학계는 반신반의하며 시큰둥한 분위기다. 이미 올해 R&D 예산(26조5,000억 원)이 전년 대비 4조6,000억 원이나 삭감되며 신뢰가 무너진 탓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나눠먹기·갈라먹기식 R&D'로 낙인을 찍은 후 거의 모든 R&D 예산이 일률적으로 깎였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던 때도 없던 일이다. 물론 R&D 카르텔로 국민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면 삭감은 마땅하다. 그러나 곪은 곳만 정밀 수술하는 게 아니라 모든 사업을 무 자르듯 잘라내면 자칫 환자의 목숨을 앗을 수도 있다.
경쟁국과 비교하면 R&D는 오히려 더 늘려도 부족할 판이다. 중국의 2022년 R&D 투자는 총 3조783억 위안(약 571조 원)을 기록했다. 같은 해 우리나라 정부와 민간 R&D 합계(112조6,460억 원)의 5배다. 미국은 우리의 9배다. 경제 규모나 인구수가 다른 만큼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지만 중요한 건 방향이다. 남들은 다 키우는데 우리만 거꾸로 간다면 결과는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카이스트 졸업식 축사 중 R&D 예산을 복원해 달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물론 그 졸업생이 녹색정의당 소속인 점은 정치적 목적을 의심하게 한다. 때와 장소를 감안하면 의견 표출 방식도 적절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역시 졸업식의 주인공이자 과학자다. 굳이 입까지 틀어막은 채 사지를 들어 끌어내는 게 경호상 최선이었는지 의문이다. 과학자에게 저렇게 해도 되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과학입국을 위한 기술진흥 5개년 계획도 추진했다. 1965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현 KIST)를 설립할 때는 사비까지 기부했다. 당시 경제기획원에서 KIST 예산을 깎자 '전액을 살리라'고 다시 지시했다. 해외 과학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대통령보다 많은 월급을 줘야 하는 상황이 생겼지만 흔쾌히 '그대로 집행'할 것을 독려했다. 카이스트를 세운 것도 그다. 학비 면제는 물론 장학금과 기숙사 제공에 병역특례 혜택까지 결정했다. 79년 10월 25일 경호원도 없이 비서실장과 경호실장만 대동한 채 대덕연구단지를 찾아 "연구원들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특명도 내렸다. 숨지기 딱 하루 전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앞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는 과학기술이 가장 발전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쿠데타와 독재, 장기집권 등의 과오에도 과학계는 그를 '과학 대통령'으로 평가한다. 한 명의 과학자가 5,000만 명의 운명과 국운을 바꿀 수 있다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릴 적 과학자를 꿈꿨던 윤 대통령이다. 역사에 ‘과학 대통령’으로 남길 원한다면 과학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예산과 지원을 늘려 합당한 예우부터 하는 게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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