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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국민은 아프면 안 된다… 전공의 과반이 집단사직 감행

입력
2024.02.21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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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95% 소속 100개 병원 집계
6,415명 사직서 제출, 1,630명 결근
환자 피해 속출, 남은 의료진 과부하
"파업 아닌 집단사직, 파급력 더 커"

2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전공의 파업에 항의하는 한 시민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2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전공의 파업에 항의하는 한 시민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대거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났다. 중증·응급환자 진료를 담당하는 대학병원에서, 병원 운영의 주축인 전공의들이 자리를 비우면서 심각한 의료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부가 비상의료체계를 가동했지만 의정 갈등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환자 피해와 의료시스템 과부하를 피할 수 없는 만큼 정부와 의사계가 신속히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전공의 절반 사직… 병원 이탈 잇따라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제시한 집단사직 시한이었던 전날 오후 11시 기준, 전체 전공의 1만3,000명 중 95%가 일하는 주요 100개 수련병원에서 6,415명이 사직서를 냈다. 소속 전공의 55% 규모다. ‘사직서 수리 금지명령’에 따라 아직 사직서가 수리된 곳은 없지만, 1,630명(25%)은 실제로 의료현장을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대전협이 진료 중단을 선언한 20일 이후 이탈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의사 총파업 당시 전공의 참여율은 80%에 육박했다.

복지부는 전날 신촌·강남·원주 세브란스병원, 한양대병원, 한림대성심병원, 부천성모병원, 대전성모병원, 천안순천향대병원 등 10곳에서 현장 점검을 실시한 뒤 실제 출근하지 않은 전공의 757명 가운데 728명에게 즉시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나머지 29명은 지난 16일 근무지 이탈로 업무개시명령을 받고도 또다시 병원을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두 차례 현장 점검을 통해 복지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한 인원은 총 831명이다. 복지부는 20일에도 전국 50개 병원에서 현장 점검을 진행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2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 브리핑 중 전공의 사직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세종=뉴시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2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 브리핑 중 전공의 사직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세종=뉴시스

정부가 업무개시명령 위반 시 ‘의사면허 박탈’ 등 엄정한 법 집행을 예고했지만, 전공의들은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의사 커뮤니티에선 면허정지 행정처분 대처법이 공유되고,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는 변호인단을 선임했다. 대전협은 이날 대한의사협회(의협) 회관에서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어 비상대책위원회 구성과 향후 투쟁 방향을 논의했다. 대전협 결정은 의협 총파업과 의대생 동맹휴학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 정부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환자 피해 증가… 의료진 업무 과부하

피해는 오롯이 환자들 몫이다. 대다수 병원이 수술 축소 및 취소, 입원 연기, 조기 퇴원, 예약 중단, 경증·비응급 환자 전원 등 비상대책을 가동했지만 현장에서 혼란은 여전하다. 의료계에 따르면 수술은 물론 검사, 처치 등 기본적인 진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환자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입원을 거부당한 환자가 직접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아 헤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를 통해 접수된 피해 신고 34건 중에는 1년 전 예약된 자녀 수술을 위해 보호자가 휴직까지 했으나 입원이 무기한 지연된 사례도 있었다. 온라인 게시판에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잊었나” “의사가 환자를 버렸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남은 의료진이 헌신하고 있지만,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실제로 일부 병원은 편법·불법 의료행위를 종용하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심전도 검사, 동맥혈액가스 검사, 혈액배양 검사, 정맥주사 같은 전공의 업무를 간호사나 임상병리사에게 지시하거나, 일반간호사를 아무 교육도 없이 갑자기 진료보조(PA)간호사로 배치해 의사 업무를 보게 한 병원도 있었다. 연장근무와 주말·휴일근무 지침이 내려진 97개 공공병원에선 장시간 노동과 업무 과부하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자칫 의료사고라도 발생하면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2~3주가 고비… “정부·전공의 대화 나서야”

전공의 집단 사직 첫 날인 2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암병동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최주연 기자

전공의 집단 사직 첫 날인 2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암병동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최주연 기자

의료계는 비상진료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을 대략 2~3주로 보고 있다. 다만 변수가 많아 2주도 불안하다. 2020년 총파업 때는 응급실과 중환자실 인력을 남겨두는 등 일부 기능을 유지했지만, 이번엔 파업이 아닌 집단 사직이라 필수의료체계가 무너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2020년 총파업은 수술 예약이 비교적 적은 여름철이었고 코로나19 탓에 일반 질환과 관련한 병원 이용이 크게 줄어 의료체계가 그나마 감당할 수 있었다”며 “사직은 향후 복귀 시기나 방법 등을 조율하기 어려워 파업보다 타격이 더 크고 후유증도 오래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태 장기화를 막기 위해 정부와 전공의 모두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전공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인력 충원이 필요한데도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이율배반적 입장과 행동은 국민 공감을 얻기 어렵다”며 “정부와 의사들은 공공의료와 의사 부족 문제를 해소할 공론장을 열어야 한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도 “환자와 가족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의사들의 집단 진료 거부는 하루빨리 중단돼야 한다”며 “정부도 ‘면허 박탈’ ‘법정 최고형’ 등 강경 대응으로만 일관할 것이 아니라 필수의료·지역의료를 살릴 수 있는 구체적 논의에 착수하라”고 촉구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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