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사적이고 또 사회적인 몸의 정치의 장

입력
2024.02.20 04:30
26면
구독

2.20 강제 삭발- 1

1960, 70년대 미국 흑인들이 인종적-미적 자부심을 과시하기 위해 고수하곤 하던 아프로(Afro) 헤어스타일. 그들은 인종 특유의 곱슬머리를 이완제 등 화학약품으로 펴지 않고 풍성하게 다듬었다. rawpixel.com

1960, 70년대 미국 흑인들이 인종적-미적 자부심을 과시하기 위해 고수하곤 하던 아프로(Afro) 헤어스타일. 그들은 인종 특유의 곱슬머리를 이완제 등 화학약품으로 펴지 않고 풍성하게 다듬었다. rawpixel.com

머리카락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된 것은 지난 세기부터다. 1920년대와 60년대 서구 페미니스트들은 긴 생머리를 잘라 전통적 미의 기준에 맞섰다. 짧은 머리는 가부장적 규범에 대한 거부의 항변이자 젠더 해방과 자유의 상징이었다. 70년대 히피 세대는 거친 장발로 기성세대가 요구하던 단정한 질서에 저항했고 80년대 펑크 세대는 모호크 스타일과 화려한 염색으로 자신들의 목청을 대신하게 했다. 60, 70년대 민권운동 시대의 흑인들은 특유의 ‘아프로 스타일’로 인종적-미적 자부심을 부각하며 차별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시각화했다. 정치-사회적 이슈를 적극적으로 부각하기 위해 삭발을 감행하는 예도 드물지 않다. 삭발은 모든 것을 걸겠다는 결사의 상징적 퍼포먼스일 것이다.

그렇듯 머리카락은 다수를 향한 소수의 의지가 미학적·이념적으로 응집-발산되는, 지극히 사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정치의 공간이 됐다.

동서양의 전제적 통치자들이 개인의 헤어스타일에 병적으로 집착해 온 까닭도 그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70년대 유신정권의 장발(히피족) 단속도 그런 예였다. 당시 치안본부(현 경찰청)는 “법질서를 경시하고 윤리·도덕을 무시하는 관념 밑에서 자유방임적 생활을 일삼는 풍조를 없애기 위해” 장발 학생-시민을 강제로 이발소로 끌고 가 다듬게 했다. 외국인도 예외가 아니어서 장발 외국인은 공항에서 머리를 잘라야 입국을 허락받았다. 장발족을 입장시킨 유흥업소는 영업정지 등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장발 단속은 미니스커트 단속과 더불어 10·26사건 직후 신군부에 의해 야간통금 해제 등 일련의 유화책과 함께 중단됐다.

67년 쿠데타로 집권한 그리스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군사정권기에도 유사한 해프닝이 있었다. 다만 한국과 달리 한 지역 경찰서장이 독단적으로 71년 2월 20일 장발 청소년들을 연행해 강제 단발을 감행한 거였다.




최윤필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