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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5' 전공의 집단사직, 35개 의대 동맹휴학…치킨게임 된 의대 증원

입력
2024.02.17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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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6시 기준 10개 병원 235명 사직서
미근무 103명에 업무개시명령… 100명 복귀
'젊은 의사' 반발에 고조되는 의료 대란 우려

전국 5대 상급종합병원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을 예고한 16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 로비에서 의료진과 환자들이 오가고 있다. 이한호 기자

전국 5대 상급종합병원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을 예고한 16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 로비에서 의료진과 환자들이 오가고 있다. 이한호 기자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단체 사직서를 제출하며 본격적인 집단행동에 나섰다. 의대생들도 동맹휴학을 결의하며 가세했다. 정부는 배수진을 치고 엄정 대응 방침을 거듭 천명해 '의정(醫政) 갈등'이 결국 치킨게임이 되는 양상이다. 가시화되는 의료 공백 우려에 국민 불안도 커지고 있다.

'빅5' 집단 사직 선언… 개별 행동서 급선회

16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에 따르면 이른바 빅5 병원(서울아산·서울대·삼성서울·세브란스·서울성모) 전공의 대표자들은 전날 밤샘 회의를 거쳐 19일까지 전원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부터 진료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빅5 병원에만 전체 전공의 약 1만3,000명 가운데 21%가 소속돼 있어 이들이 한꺼번에 병원을 떠날 경우 의료 대란이 불가피하다. 추후 집단행동에 동참하는 병원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2020년 의사 총파업 때는 전공의 중 80%가 진료를 거부해 정부가 의대 증원을 철회했다.

당초 대전협은 전날 사직 선언을 한 박단 회장을 필두로 '개별 사직' 투쟁을 전개하는 듯했으나 하루 만에 집단행동으로 급선회했다. 개인 사유를 내세운 사직도 실상은 집단적 항의 표출의 일환인 만큼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명령'과 '사직서 수리 금지명령'에 위배된다는 판단 아래 우회로 대신 정공법을 택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의료계에서도 대전협을 향해 즉각적인 집단행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친 것으로 전해졌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전공의 집단 사직 관련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전공의 집단 사직 관련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이미 사직서를 던진 전공의들도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6일 오후 6시 기준 전국 10개 병원에서 총 235명이 사직서를 냈다. 다만 사직서가 수리된 곳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복지부가 집단 사직서가 제출되거나 제출이 의심되는 12개 병원을 대상으로 현장 점검을 실시한 결과, 서울성모병원 48명, 부천성모병원 29명, 성빈센트병원 25명, 대전성모병원 1명 등 4개 병원에서 전공의 103명이 실제 근무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는 의료법에 따라 업무개시명령을 내렸고, 이후 100명은 병원으로 돌아왔다. 복귀하지 않은 나머지 3명에 대해선 업무개시명령 불이행 확인서를 징구했다.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할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고,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되면 의사 면허가 취소된다.

복지부는 전공의 이탈을 막기 위해 전체 221개 수련병원에 '집단연가 사용 불허 및 필수의료 유지명령'을 발동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정부는 절차에 따라 기계적으로 법 집행을 할 것"이라며 2020년 업무개시명령을 어긴 전공의에 대한 고발 취하 같은 사후 구제나 선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의대생도 동참 움직임… 국민 피해에 여론 악화

의대생들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전국 40개 의대 가운데 35개 의대 대표자들은 긴급회의를 열어 20일에 단체 휴학원을 제출하기로 했다. 다만 휴학원을 내더라도 학부모 동의와 교수 면담 등을 거쳐야 해 얼마나 많은 인원이 휴학할지는 미지수다. 앞서 4학년 단체 휴학을 결의했던 한림대 의대에서도 아직 휴학 신청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는 의대 상황 대책반을 꾸리고 긴급교무처장 회의를 열어 의대생들의 휴학 신청이 들어올 경우 요건과 처리 절차를 준수해 동맹휴학이 승인되지 않도록 학사 관리를 엄정히 해달라고 주문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는 최악의 사태를 막고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전공의와 정부 간 중재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16일 전북 익산시 원광대 의대. 익산=뉴스1

16일 전북 익산시 원광대 의대. 익산=뉴스1

의료계 집단행동이 가시화하면서 환자 피해는 현실이 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전공의 휴진에 대비해 내부적으로 수술 연기·축소 방침을 공지했고 일부 진료과는 환자 중증도에 따라 일정 조정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성모병원 등 다른 대형병원들도 수술과 입원 일정을 변경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경기 지역 한 병원은 전공의 부재를 우려해 20일 예정된 암환자 수술을 연기하기도 했다. 박 차관은 "응급의료기관 필수진료체계 유지, 중환자 우선 진료, 이송·전원체계 구축, 인력 재배치 등 병원 및 지역별 비상진료계획이 수립돼 있다"며 "모든 자원을 동원해 국민 생명과 건강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은 의사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한국갤럽이 지난 13~15일 전국 성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6%가 의대 증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부정적 의견은 16%에 그쳤다. 답변 유보는 9%였다. 여권 성향 81%와 야권 성향 73%가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등 정치적 이견도 없었다. 찬성 이유로는 '의사 수 부족·공급 확대 필요'(40%), '국민 편의 증대·의료서비스 개선'(17%), '지방 의료 부족·대도시 편중'(15%) 등을 꼽았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국민 생명을 살려야 하는 전공의들은 국민을 상대로 싸우지 말라"며 "전공의들의 진료 거부로 발생하는 환자 피해와 직원 피해 상황을 파악해 국민에게 공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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