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종말을 자초하는 인간이여, 산·강·숲도 '자기 권리'가 있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인류의 활동이 지구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들어섰다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입니다. 이제라도 자연과 공존할 방법을 찾으려면 기후, 환경, 동물에 대해 알아야겠죠.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가 4주마다 연재하는 ‘인류세의 독서법’이 길잡이가 돼 드립니다.
‘동물권’이라는 말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취급을 받았다.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정리해 두자. 동물권이란 동물이 재난지원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거나 대통령 선거에 나갈 권리를 말하지 않는다. 법적으로는 수동적인 권리를 뜻한다. 반려동물이라면 학대당하지 않고, 야생동물이라면 서식지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같은 것 말이다.
공리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의 책 ‘동물해방’이 1975년 출판되면서 이 말은 시민권을 얻기 시작했다. 고통을 느끼는 생명이라면 고통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간명한 주장이었다. 반면 미국의 철학자 톰 리건은 감정과 자의식, 미래 계획 능력 등을 가지고 자신이 ‘삶의 주체’임을 경험하는 동물은 본래적인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두 철학은 각각 ‘동물해방론’과 ‘동물권리론’이라는 이름으로 서구 동물철학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두 철학은 명쾌했지만 공격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동물권리의 경계선은 어디에 긋나. 고통을 처리하는 중앙신경계가 없는 홍합은 어쩌나. 바퀴벌레는 삶의 주체가 아닌가. 진지하게 이야기할수록 꼬여만 갔다. 근대 철학에 비판적인 이들은 이들 담론이 인간중심적 권리 개념을 동물에 이식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권리가 개인(개체)에게 귀속되는, 배타적인 소유 개념의 권리로는 인간과 비인간동물의 세계를 통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근대 서구법 체계에서 권리를 가진 건 인간(권리주체)이다. 자연(권리객체)은 권리 행사의 대상으로 사용되거나 소유된다. 이런 이분법에서 탈출하지 않으면 동물권은 ‘자격이 있는’ 일부 종을 권리주체로 승격하는 작업에 지나지 않게 된다.
오히려 권리에 대한 발본적인 재구성이 필요한 건 아닐까. 브라질 원주민 지도자 아이우통 크레나키의 연설과 관련 해설을 묶은 책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아마존의 목소리’를 읽으면 다른 방식의 권리를 ‘느낄’ 수 있다.
크레나키는 말한다. 자신들은 동물과 산과 강과 숲이 존재론적으로 평등하다고 느끼며 자연스럽게 인격적 관계를 맺고 살아왔다고. 산이 ‘오늘 대화할 기분이 아니야’라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 각자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산이 하얀 구름으로 치장하고 아침 햇살을 맞고 있으면 춤을 추든, 낚시를 하든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여겼다.
이러한 다종의 세계는 아마존을 침범한 서구인들에 의해 ‘종말’을 맞았다. 그들은 자연을 마음대로 써도 되는 물건 취급했다. 스스로 ‘인류’라고 부르며 이 행성에는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밤하늘 별자리처럼 제각기 빛나던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자신의 방식으로 통일되는 걸 당연시했다. 그런 생각은 대세가 됐고 상식이 됐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동물의 권리도 자신과 똑같은 방식으로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원주민의 세계관이 법에 반영된 사례가 있다. ‘자연의 권리’를 인정한 나라에서다. 그간의 동물권 논의가 개체주의(individualism)에 기반한 것과 달리 자연의 권리는 동시에 생태계에도 권리가 있다는 전체론적 관점(holism)을 취한다. 에콰도르는 헌법에 ‘파차마마’(어머니 지구)의 권리를 써놓았다. 뉴질랜드는 강과 강바닥, 물고기 등 다수 존재가 연결되는 황가누이강의 법인격을 인정하는 법을 2017년 제정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11월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남방큰돌고래에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생태법인’을 도입하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법 하나로 우리의 세계관이 단숨에 바뀌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크레나키의 말처럼 종말을 맞은 세계를 복원하는 작은 발걸음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