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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방아와 구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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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답답하다. 대학에 붙을까. 직장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인생의 짝은 언제 만날까. 사업은 잘될까. 저마다 속이 탄다. 정월 내내 점집이 미어터질 게다. 용하다는 점집이 자리한 종로, 강남뿐만이 아니다. 신촌, 홍대 인근 대학가에도 타로, 사주, 신점집이 줄잡아 30곳은 된다. 샤머니즘이 과학기술을 크게 앞선 느낌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파자점(破字占·한자의 자획을 나누거나 합해 보는 점)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함경도 안변군(현 강원도 안변) 점집을 찾아 글자 가운데 ‘물을 문(問)’ 자를 짚고 점괘를 물었다. 점쟁이는 “좌로도 임금 군(君), 우로도 임금 군이니 틀림없이 군왕이 되겠다”며 큰절을 올렸다. 옆에 있던 거지도 같은 글자를 짚자 점쟁이는 “문(門) 앞에서 입(口)을 딱 벌리고 있으니 천생 거지 팔자”라고 핀잔했다. 운명은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 점쟁이 말은 참고만 할 뿐 너무 기대진 말라는 가르침이다.
이맘때 길거리에서 토정비결 보는 걸 좋아한다. 종로 거리나 지하도를 걷다 보면 토정비결 봐주는 어르신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한 해 운수를 듣는 데 만 원이면 충분하다. 막걸리와 빈대떡값에 정성껏 말해주니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1, 2월엔 구설수가 있으니 언행을 조심해요”, “6~8월엔 물가에 가지 말아요”….
구설수는 말싸움을 하거나 헐뜯는 말을 듣게 될 운수다. 손재수(재물을 잃을 운수), 관재수(관청으로부터 재앙을 받을 운수) 등과 같이 ‘수(數)’는 운수를 뜻한다. “구설수가 있다” “관재수가 들다” “손재수가 끼다”처럼 운수는 있다, 들다, 끼다와 어울린다.
구설은 남을 헐뜯는 말이다. 구(口)는 입을 벌린 모양이고, 설(舌)은 입술 밖으로 혀가 나온 모습이다. 혀를 잘못 놀리면 큰일을 당할 수 있다. 말은 돌고 돌아 결국 그 자신이 구설에 오르고, 구설에 휘말리게 될 테니까.
한자어 구설보다는 우리말 "입방아에 오르내리다" "입길에 오르다"가 듣기에 편안하다. 남의 흉을 보는 입놀림이 입길이고, 이러쿵저러쿵 쓸데없이 입을 놀리는 일이 입방아다. 말밥 역시 좋지 않은 이야기의 대상이다. 애먼 사람을 말밥에 얹지 말고, 말밥에 오르지도 않게 조심해야 한다.
운명은 의지에 달렸다. 안정애의 시 ‘토정비결’ 속 여인은 부부의 연을 놓고 고민한다. “올해는 말을 조심하란다/혀만 함부로 놀리지 않으면/몸에 꽃이 핀단다/용띠 뱀띠와 섞이지 말고/말띠 토끼띠와 어울려 놀란다/어쩌나 내 서방이 토끼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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