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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와 흑인의 역사의 힘겨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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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9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링컨 주빌리(Lincoln Jubilee)’ 행사가 열렸다. 노예해방선언(1863) 50주년 및 흑인 자유 반세기 기념행사로 기획됐다가 2년 연기돼 열린 그 행사는 흑인 억압-자유의 역사와 인권 운동가들의 활약상, 예술과 경영 등 여러 분야에서 이룬 흑인들의 성취를 기억하고 부각하는 이벤트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흑인 역사학자 카터 우드슨(Carter G. Woodson, 1875. 12. 19~1950. 4. 3)은 그런 행사가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판단, 그해 말 ‘흑인의 삶과 역사 교육협회(ASNLH)'를 창립한 뒤 긴 준비 과정을 거쳐 1926년부터 매년 2월 둘째 주를 ‘흑인 역사주간’으로 선포했다. 링컨(2월 12일생)과 흑인 인권운동가 프레더릭 더글러스(2월 14일생)가 태어난 주였다.
우드슨은 버지니아 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켄터키주 베레아(Berea)칼리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잠시 교사 생활을 한 뒤 시카고대(석사)와 하버드대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W.E.D 두보이스에 이어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두 번째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자 노예 출신 첫 역사학 박사로, 당시 미국 역사학계의 사실상 유일한 비백인이었다.
흑인 역사주간은 공립학교들이 연중 일주일간이라도 흑인 역사와 영웅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게 하자는 취지였다. 1969년 오하이오주 켄트주립대 흑인 학생들이 ‘흑인 역사의 달’을 선언하며 우드슨의 뜻을 확장했고, 대중적 호응 속에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이 건국 200주년이던 76년 ‘흑인역사의 달(2월)’을 공식 선포했다. 저 전통은 아프리카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공유하는 북미와 유럽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다.
근년에는 “흑인 역사가 곧 미국 역사”라며 저 전통을 못마땅해하는, 배우 모건 프리먼 같은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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