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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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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섣달그믐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얘지는 줄 알았다. 차례 음식 만드는 엄마 옆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면 거울 앞으로 달려가 눈썹을 확인했다. 설날 새벽녘, 복조리 장수의 발소리가 들릴 때까지 졸린 눈을 비벼가며 잠을 쫓았다. 오래전 그땐 집집마다 설날 전날엔 밤새 집 안에 불을 밝혔다. 이 집 저 집 마당 가득한 웃음소리에 휘영청 둥근달도 깔깔깔 웃었다.
언니·오빠의 장난이었다는 걸 중학생이 된 다음에야 알았다. 별명 값을 톡톡히 한 셈이다. 남의 말에 쉽게 속아 넘어가는 데다 행동까지 굼떴던 나는 어릴 적 ‘둥자’로 불렸다. 한자 ‘둔자(鈍者)’를 그나마 귀엽게 발음한 것 같다. 요즘도 엄마나 언니, 오빠가 어쩌다 “둥자야” 하고 부르면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휙 넘어지는 시늉을 낸다. 아버지도 함께라면 웃음소리가 더 클 텐데, 왜 그리 급하게 저세상으로 떠나셨는지.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서럽고 아프다.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는 속담이 있다. 설에 눈이 많이 내리고, 대보름엔 환한 달이 떠야 풍년이 들어서 좋다는 뜻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설날 아침 눈이 내리면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아버지 손잡고 친척집으로 세배하러 가던 길엔 늘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댓돌에도 장독대에도 담장에도 나뭇가지에도.
설이 오면 설레는 건 세뱃돈 때문일 게다. 어른들께 세배를 올린 후 덕담과 함께 빳빳한 새 돈을 받으면 뿌듯했다. 대학에 입학하던 해와 언론에 첫발을 내디디던 해, 아버지는 말 대신 글로 딸이 새로 돋고 솟아나길 기원하셨다. 아직도 내 작은 보물 상자엔 ‘젊은’ 아버지의 덕담이 담겨 있다.
설을 ‘구정’이라고 하면 조상들은 서운할 게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설’도 큰 시련을 겪었다. 일제는 한민족의 혼을 뭉개려 설을 없애고, 일본 설인 ‘신정’을 쇠라고 강요했다. 설은 낡은 풍습으로 깎아내려 ‘구정’이라고 칭했다. 설이 가까워 오면 방앗간 문을 못 열게 하고, 세배 다니는 이들에게 검은 물이 든 물총을 쏘는 등 야비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설을 지킨 건 민초였다. 신정은 그저 ‘왜놈들 설’일 뿐이었다. 1985년 구정은 ‘민속의 날’로 바뀌었다. 그리고 1989년 민속의 날이 설날로 지정되면서 드디어 옛 이름을 되찾았다. 더 이상 신정, 구정, 음력설, 양력설로 구분해 말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설은 당연히 음력 1월 1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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