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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농성장의 거대한 외계 문어…라면에 넣을 것인가, 회로 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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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며 데모하는 작가’ 정보라(48)의 자전적 공상과학(SF)소설집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첫 수록작인 단편소설 ‘문어’는 대학 강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 시행된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이 부른 대량 해고 사태가 배경이다. 강사법 시행에 관한 협약을 무시하는 한 대학교에 항의하려 세운 농성 천막 인근에 거대한 문어 두 마리가 나타난다. 밤샘 농성을 하던 대학 강사 노조의 ‘위원장님’은 문어를 라면에 넣어 먹어버린다. 12년간 대학 강사로 일했고 지금도 처우 개선을 위해 싸우는 정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한 SF인 셈이다.
정 작가는 1일 한국일보에 “내 모든 소설은 사실 대부분 자전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전 작품에서는 어디가 자전적인지 혼자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엔 남들이 봐도 티가 날 뿐”이라는 것. ‘문어’는 정 작가의 남편인 임순광 전 한국비정규교수노조위원장이 대학 농성장에서 김광석의 노래 ‘일어나’가 기운차게 울리는 가운데 술을 마시고 자는 모습이 “부조리하게 웃겨서 반드시 소설에 쓰고야 말겠다고 결심”한 끝에 나왔다.
이후로도 “(남편과) 연애하면서 웃기는 일화가 있을 때마다 소설에 써야겠다고 생각했더니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그는 전했다.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자. 위원장님과 같은 노조 소속의 ‘나’는 농성장에 들렀다가 “지구─생물체는─항복하라”고 말하는 복도를 꽉 채우는 크기의 문어와 맞닥뜨린다. 외계에서 온 이 문어를 휴대폰으로 후려쳐 쓰러트린 건 이번에도 위원장님이다. “생물 문어 이렇게 큰 거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나”라면서 또다시 이를 손질해 문어회로 먹으려던 위원장님과 나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에게 연행된다.
우여곡절 끝에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된 위원장님과 나. 소설 속에서 두 사람은 가는 곳마다 러시아어로 “도와주시오”라고 말을 거는 대게(수록작 ‘대게’), 루비처럼 붉은 피부의 상어(‘상어'), 우주 해파리(‘해파리’) 등 온갖 해양 생물들과 해양정보과라는 수상한 조직의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과 얽힌다. 비현실적인 해양 생물들과 달리 부부를 둘러싼 세계는 현실 그 자체다. 강사법으로 오히려 나빠진 한국 대학가의 풍경과 계속되는 불법 파견, 부당 해고, 러시아의 해저 가스관 설치와 우크라이나 침공,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 기후 위기 등.
현실의 문제와 싸우는 나와 위원장님의 무기도 더없이 현실적이다. 부당한 노동환경에 놓인 대게에게 남편(전 위원장님)은 ‘조직화’를 하라고 조언한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요구 사항을 전달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다. 모험의 조력자 역시 평범하기 그지없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나’를 구한 건 교통약자용 전동스쿠터를 탄 어머니와 경북 포항 죽도시장의 어르신들이다.
“(나의) 혼란과 분노를 풀어낼 길을 찾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정 작가다. 권선징악이 확실한 그의 소설답게 이번 책에서도 악인은 벌을 받는다. 결말이 나지 않거나 혹은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건이 향하곤 하는 현실과 다르다. “정신 건강을 위해 비슷한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는 상황을 상상하고 원하는 결말로 개연성 있게 흘러가도록 궁리”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짓기 때문이다.
현실이 그렇듯 나쁜 사람들이 제거된다고 해서 소설에도 당장 해피엔딩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악인은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타나고 순조롭게 나빠지는 세상이지만, 소설과 현실 모두에서 우리는 “질 줄 알면서도,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언젠가는 끌려 나가 사라지더라도” 계속 함께 싸울 것을 다 같이 다짐한다. 중요한 건 ‘다 같이’라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을 뛰어넘어 지구 생물체 모두가 “자기 방식으로 생존하기 위해, 존엄하기 위해, 자유롭기 위해 싸우고 있다.”
소설 바깥의 정 작가 역시 자신이 강사로 몸담았던 연세대를 상대로 퇴직금과 각종 수당을 지급하라는 소송으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개인이 아니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수많은 비정규교수노조원을 위한 저항이다. ‘저주토끼’로 전미도서상 후보에 올라 미국 뉴욕으로 향한 지난해 가을에는 시상식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 반대 성명을 함께 낭독했다.
“타인의 이야기에 공감했고 지금도 공감하기 때문에 같이 데모하러 나서는 일이 많다”는 정보라라는 작가를 이미 좋아하는 이들뿐 아니라 그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누군가의 옆구리에 ‘지구 생물체는…’을 찔러주며 이렇게 중얼거리고 싶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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