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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용 ’약속 대련‘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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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고교시절 가을운동회 때 일이다. 운동장 한복판에서 벌어진 검도대결을 전교생이 둘러앉아 손에 땀을 쥐며 지켜봤다. 검도부에서 가장 실력이 출중한 두 친구 간 한판승부였다. 건장한 체격에 한 명은 힘이 좋았고, 다른 쪽은 운동신경이 빨랐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 뭔가 어색한 느낌을 상당수가 받았고, 둘과 친했던 나는 다음 날 후일담을 듣게 된다. 실은 경기 전날 뒤뜰에서 승패를 겨뤄 결과를 미리 정한 일급비밀이었다. 의도가 의문인 데다 진검승부는 싸움에 집중한 둘 외엔 아무도 못 본 셈이다. 예능프로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면 시청자를 능멸한 ‘방송윤리 위반’에 해당한다.
대중은 흥미진진한 실전을 좋아한다. 그런데 지난주 벌어진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공개충돌이 필연적 ‘사고’인지, ‘약속 대련’(約束對練)으로 최종 해석될지, 평가는 현재진행형이다. 충돌 이유는 여권이 쉬쉬하던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작품이나 다름없는 영입인사가 공개사과를 주장하면서 역린을 건드린 탓이다. 한 위원장이 “국민 걱정”, “국민눈높이”라고 동조하자 취임 한 달도 안 된 집권당 대표를 대통령이 불신임했다는 믿기 힘든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수직구도가 명확한 권력 1, 2인자 간 공개 대련은 곧 판가름 날 것이다. 총선승리라는 대전제 앞에 둘은 공동운명체다. 그런데 한 위원장은 이번 일로 차별화에 절반은 성공했다. 그는 “누구를 맹종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악조건 속에 그는 선거프레임 전환을 시도 중이다. 새 정권 2년여 국정성과를 과시하고 평가받는 흔한 수순에 뜬금없는 ‘운동권 청산’을 들고나왔다.
여당의 입장에선 고육책이고 늘 그래왔다. 5공 정권을 끝내기 위해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 대선이 성사되자 12·12군사반란 주역인 여당 후보 노태우는 돌연 ‘위대한 보통사람’을 외쳤다. 이런 행태는 특정진영과도 관련이 없다. 2007년 “친노만 아니면 된다”는 ‘묻지마 투표’ 광풍에 대선을 치르던 정동영 후보 측은 난데없는 “가족행복시대”를 내세웠다.
여당의 승리비법은 야당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1987년 6·10항쟁 성과를 투쟁 대상에 안겨준 건 양김(김영삼·김대중)의 분열 때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로 굳어져 있다. 부정평가가 두 배에 해당하는 60% 전후라면 선거는 필패다. 단, 양당제가 아닌 다당제 구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제3지대 통합신당이 출현하지 않는 한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근소한 차이로 제1당이 결정될 것이다.
그 결과에 당정 핵심의 운명이 얽혀 있다. 총선 패배 시 윤 대통령은 국정성과를 본격화하긴커녕 정상적 대통령제 운영조차 힘들어질 수 있다. 한동훈의 존재가치도 소멸된다. 승리하면 임기 전성기를 맞은 대통령과, 보수진영을 살려낸 미래주자 ‘2개의 태양’이 뜨게 된다. 자고로 권력은 혁명을 시작한 초기 창업그룹보다 혁명을 끝내는 쪽에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현재 상황이라면 총선승리 공은 한동훈 쪽이 될 수밖에 없다. 권력핵심 간 공개적 암투를 벌이는 ‘그들만의 위기’를 자초한 건 차기 주자를 일찍 불러내야 할 처지를 만든 용산 쪽이라서다.
결국 진정한 당정일체가 되려면 윤 대통령이 총선승리에 기여하는 길이 해법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혹여 용산의 공천개입 파동이 터진다면 2016년 ‘옥새 들고 나르샤’식 패배로 이어질 것이다. 그럼 민심에 근접한 쪽으로 국정기조를 바꿀 수 있겠나. 정권지지율과 한동훈 지지율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 ‘당정 디커플링’을 해결할 방법이 뭔지, 밤잠을 설치며 골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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