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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쟁 후 몸집 커진 푸틴… "미국 갈팡질팡에 국제질서 균열 노려"

입력
2024.01.29 04: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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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 "러, 세계경제 내 미국 입지 약화 논의"
'미, 우크라 지원 고전'에 자신감 '기세등등'
정치적 입지 커지자 중동 등에 손 뻗기도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27일 러시아 레닌그라드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기념관 제막식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타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27일 러시아 레닌그라드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기념관 제막식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타스 연합뉴스

"세계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의 힘을 약화시키자." "친(親)러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더 강화하면 서방을 약하게 만들 수 있다."

2022년, 2023년에 소집된 러시아 연방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한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에 해당) 내부 문서에 담겨 있는 일부 내용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유럽 정보기관이 입수한 이 문서들을 토대로 "러시아가 미국 중심의 현 국제질서에 균열을 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될 줄 알았던 러시아가 오히려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예전만 못한 상황을 이용, 그 빈틈을 노리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과 '새 글로벌 금융 체계' 구축 꿈꾸는 러

WP에 따르면,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은 2022, 2023년 달러의 영향력을 줄여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주도하는 미국의 힘을 축소시키는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해 4월 3일 자 문서엔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새로운 세계 질서 창출'이라고 명시됐다.

중국과의 신(新)금융 시스템 구축도 러시아의 구상 중 하나다.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안보리 의장의 최측근이 지난해 여름 작성한 크렘린궁 내부 문서에는 '중국과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분야 협력 강화' 내용이 나온다. 서방 위주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우회할 블록체인 등 대체 결제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통해 '유라시아 디지털 통화' 같은 새 금융 체계를 꾸린다는 것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WP에 "현 금융 시스템은 신뢰할 수 없어 새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미, 우크라 지원 전략 수정… 러, 친러 체계 강화

러시아의 자신감은 '두 개의 전쟁'으로 미국의 위상이 낮아졌다는 게 입증됐다는 판단에 기인한다. 우크라이나의 거듭된 고전에도 미국이 추가 지원을 결정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한다는 게 이를 반증한다. 실제 미국이 '우크라이나 10년 장기 지원 전략'을 수립하며 후퇴하는 조짐도 있다. WP는 전날 복수의 당국자를 인용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 전략을 기존의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 탈환'에서 '러시아의 추가 진전을 막는 방어전 강화' 쪽으로 수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사이, 러시아는 '친러 국가 체계'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후 중국과 이란, 옛 소련 국가가 아닌 다른 나라를 찾는 건 이례적인 행보였다. 작년 10월엔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고위 인사들을 러시아로 초청하기도 했다. 29일에는 대표적인 친러 국가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 통합 방안도 논의한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11일 극동 지역인 하바롭스크주의 태평양국립대를 방문해 유리 마르핀(가운데) 교수의 설명을 듣고 있다. 하바롭스크=타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11일 극동 지역인 하바롭스크주의 태평양국립대를 방문해 유리 마르핀(가운데) 교수의 설명을 듣고 있다. 하바롭스크=타스 연합뉴스


"러 엘리트층 다시 결속, 푸틴 입지 더 강해져"

과거 '푸틴의 충견'으로 불린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무장 반란 사태(지난해 6월)로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의심까지 받았던 푸틴 대통령이 최근 보폭을 넓히는 건 예사롭지 않다. "정부 장악력이 한층 세졌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란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WP는 러시아의 한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전쟁에 회의적이었던) 엘리트층이 (푸틴을 중심으로) 결속하고 있다"며 "현 상황이 러시아에 점차 유리하게 바뀔 것이란 기대가 커지면서 푸틴 대통령 입지는 더 공고해졌다"고 전했다.

기세등등해진 푸틴 대통령은 유럽에도 공세적 태도를 보인다. 그는 이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기념관 제막식에서 "오늘날 러시아가 마주한 침략 상황은 1945년 나치즘이 패배했지만 근절되지 않았다는 반증"이라며 "러시아에 대한 혐오는 많은 유럽과 발트해 연안 국가, 우크라이나의 무기가 됐다"고 비난했다.

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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