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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명 사망' 러 수송기 추락 미스터리… "러 vs 우크라, 정보전 가열"

입력
2024.01.26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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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포로 65명 태운 러 수송기 추락
러 "우크라, 포로 교환 방해하려고 격추"
젤렌스키 "러시아가 장난을 치고 있다"
진실 공방 양상… "적국 흔드는 정보전"

24일 러시아 국경지대 벨고로드에서 추락한 러시아군 수송기 잔해 모습. 벨고로드=타스 연합뉴스

24일 러시아 국경지대 벨고로드에서 추락한 러시아군 수송기 잔해 모습. 벨고로드=타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포로를 태운 러시아 공군 수송기가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사건을 둘러싸고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무엇보다 추락 경위가 불분명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이 미사일을 발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구체적 증거는 내놓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여론 조작을 위한 러시아의 ‘정보전’이라고 맞섰지만, 마찬가지로 미사일 발사 여부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다. 전쟁을 벌이는 두 국가 간 진실 공방으로 번질 조짐도 보이고 있다.

러 "포로 65명 포함 전원 사망"… 증거는 제시 안 해

24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영상 연설에서 “모든 사실을 명확히 규명하는 게 필요하다”며 국제기구의 조사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포로들의 생명은 물론, 그들의 가족들과 우리 사회의 감정을 갖고 장난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규탄했다.

앞서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오전 11시쯤 일류신(IL)-76 수송기가 포로 교환을 위해 비행하던 중, 우크라이나 북부 접경 지역인 벨고로드에서 대공 미사일을 맞고 추락했다고 발표했다. 항공기에는 우크라이나군 포로 65명과 러시아인 9명(승무원 6명, 호송 요원 3명) 등 총 74명이 탑승해 있었고, 이들 전원은 사망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군은 미사일 발사 여부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다만 군 사령부는 “벨고로드로 접근하는 러시아 군용기를 정당한 표적으로 간주할 권리가 있다”는 입장만 냈다. 한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 관리는 미국 CNN방송에 "포로 교환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구체적인 이송 경로나 시간 등은 몰랐다"고 말했다. 종합하자면, 우크라이나군이 자국 포로 수십 명이 타고 있는 수송기임을 모른 채 미사일을 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는 셈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5일 스위스 베른 인근 케르사츠에서 비올라 암헤르트 스위스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베른=AP 뉴시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5일 스위스 베른 인근 케르사츠에서 비올라 암헤르트 스위스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베른=AP 뉴시스


우크라군, 자국민 탄 줄 모르고 격추했다?

하지만 의문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탑승자 명단 △발견된 시신 숫자 △발사된 미사일 종류 등은 물론, 구체적인 추락 경위를 설명할 만한 증거를 제대로 내놓지 않고 있어서다. 일각에선 기체 결함에 따른 추락 가능성, 심지어 러시아의 자작극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특히 포로 65명 이송을 위해 호송 요원 3명만 배치했다는 점도 의구심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 미국 관리는 AP통신에 "추락한 수송기에 우크라이나 포로가 실제로 탑승하고 있었는지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25일 러시아 타스 통신은 수송기 블랙박스와 미사일 파편이 발견됐다고 구조당국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기체에 외부 충격이 있었음을 확인하는 요소"라고 전했다.

이 사건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의제로도 올라갔다. 러시아 요청에 따라 안보리는 25일 회의를 열 계획이다. 진실 규명의 관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측에 포로 이송 시간·경로 등 세부사항을 전달했는지 △이 정보가 최전선의 우크라이나 군부대에도 전달됐는지 등이라고 CNN은 짚었다. 다만 추락 지점이 러시아 영토 내라는 점에서, 제3국에 의해 중립적 조사가 이뤄질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추락 당시 영상도 지면 충돌 직전 순간만 담고 있어 한계가 많다.


23일 우크라이나 구조대원들이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하르키우의 한 주거용 건물에서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 하르키우=EPA 연합뉴스

23일 우크라이나 구조대원들이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하르키우의 한 주거용 건물에서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 하르키우=EPA 연합뉴스


상대국 흔들기 '정보전' 가열 양상

상대국 여론을 흔들려는 정보전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번 테러 공격을 통해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자국민 생명도 무시하는 진짜 본모습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러시아 의도대로 우크라이나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어떤 이유로든 우크라이나의 미사일 발사가 사실이라면, 국내 여론이 악화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탄약과 병력 부족, 서방의 지원 약화 우려 등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쟁 노력에 고통스러운 좌절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두 나라는 민간인 대규모 사상자를 낳은 공격이 발생할 때마다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지난 21일 러시아 점령 지역인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시의 한 시장이 폭격을 받아 민간인 사상자가 50명(사망 27명) 이상 발생했을 때에도 양국은 서로에 책임을 미뤘고, 공격 주체는 지금도 불분명한 상태다.

위용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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