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정말 우리 같은 설렁탕집도 중대재해법 적용받아요?"

입력
2024.01.24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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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적용 논란
소상공인 "내 문제인지 몰라... 대비 안해"
하청업체 "도급 단가에 안전비용 없어...
법이 요구하는 안전담당자 채용 힘들어"
전문가들 "소상공인 처벌은 과한 걱정,
소상공인 중소기업 맞춤형 설계는 필요"

서울에 위치한 한 설렁탕 가게 직원이 설렁탕을 담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에 위치한 한 설렁탕 가게 직원이 설렁탕을 담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중대재해처벌법이 우리 같은 작은 가게에도 적용되나요?

서울 마포구 설렁탕집 사장 장모씨



27일 시행될 것으로 보이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에 준비가 돼 있냐는 질문에 서울 마포구에서 종업원 8명과 함께 설렁탕 가게를 운영 중인 장모(56)씨가 내놓은 답이다. 그는 기자에게 덤덤하게 "(중처법에) 큰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고 했다. 장씨는 "매일 큰 솥에 소의 사골, 도가니, 양지를 넣어서 우려내고 토렴하는 게 우리 장사의 핵심"이라며 "10년 넘게 뜨거운 솥과 날카로운 칼을 다루면서도 정해진 동선으로만 움직이고 가스 밸브 하나하나 신경 쓰면서 일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사장이자 안전책임자, 10년 동안 무사고" 자신하지만…

서울 중구 명동의 식당가 모습. 연합뉴스

서울 중구 명동의 식당가 모습. 연합뉴스


정부와 정치권 중심으로 "요식업 등 영세 소상공인들이 중처법 때문에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실제로 장씨의 가게도 중대 산업 재해와 중대 시민 재해가 일어나면 법이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일보가 만난 소상공인들 중 상당수는 기자들에게 중처법 적용 대상 여부를 되물을 정도로 모르거나 무시하고 있었다. 법 내용을 잘 알지 못하고 뉴스도 대부분 제조업 중심이라 요식업까지 적용될 거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 여기에 오랫동안 '무사고' 경험까지 있으면 당당하게 굳이 대비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고 답하는 이들도 있었다.

서울 종로구에서 중국 음식점을 운영하는 강모(66)씨는 "내가 사장이면서 안전 책임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큰불이 날 가능성은 있지만 그래서 더 조심하고 안전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어 중처법 적용 대상이 어딘지 큰 관심이 없다"며 "이 법으로 처벌받을까 봐 걱정하는 식당 사장님들은 평소 안전에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일갈했다.



제조업 "하청업체들 발동동" 유통업 "거부감 없어"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 취약분야 지원대책 관련 당정협의회 회장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연장 폐기 손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 취약분야 지원대책 관련 당정협의회 회장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연장 폐기 손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반면 건설, 조선, 철강 등 제조 업종에선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절단 사고나 깔림사, 추락사, 화재 등이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하청업체들은 "위험한 작업은 원청업체가 하지 않고 여러 단계의 하도급을 거쳐 내려오는데 이미 단가가 깎일 대로 깎여 안전 설비나 체계를 갖추는 데 쓸 돈이 없다"고 걱정을 토로했다.

경남 창원시의 폐선박 해체업체 대표인 이모(69)씨는 "원청 업체에서 안전 비용을 포함시켜 단가를 설정하면 되는데 비용을 아낀다며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며 "법에서 요구하는 안전 담당자 등을 둘 수 있는 여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중소기업에 산업 안전 컨설팅을 하는 손보인 변호사는 "중처법이 시행된다고 당장 중소기업들이 문 닫을 상황이 생기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하청업체는 50인 미만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들이 위험한 업무를 50인 이상 규모 있는 기업들과 똑같이 해내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50인 미만 업체들의 영세한 상황을 고려해 의무 규정 중 일부 이행이 어려운 부분은 유예하고 당장 시행할 건 시행하는 식으로 융통성을 발휘할 부분은 있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반면 유통 기업들은 법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았다. 한 유통기업 관계자는 "유통 매장은 직원은 물론 많은 고객들도 쓰는 곳이니 안전을 강조하는 중처법을 비효율적이라고 여기진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대형마트 관계자는 "예전 법 시행 후 매장마다 안전관리자 1명을 두고 있다"며 "안전관리자가 사고가 예상되는 현장을 관리해서 그런지 쌓아둔 물건이 떨어지거나 지게차 후진 사고 등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식당 처벌 우려는 다소 과해...그래도 대비는 해야"

경기 의정부시 용현동 용현산업단지 내 한 공장에서 불이 나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을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경기 의정부시 용현동 용현산업단지 내 한 공장에서 불이 나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을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전문가들은 법 취지가 만에 하나 사망 사고 등이 일어나면 책임자를 처벌하는 데 목적을 두기 때문에 영세 사업장도 법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안전한 작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정부가 나서 영세 사업장에 맞는 '기본적 재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맞춤형 제도를 만들어 이것이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기초적 산업 재해 예방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소상공인, 중소기업 수준에 맞게 주문해야 한다"며 "하지만 현장에서는 소상공인, 중소기업만의 안전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상무 기자
나주예 기자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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