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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에 마약 파티할 사람 모여라"... 경찰관의 죽음으로 끝난 쾌락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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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26일 오후 10시쯤. 서울 용산구의 한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14층에 낯선 남자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그렇게 122㎡(약 37평) 아파트는 25명의 남성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이 세대 거주자(세입자) 정모(46)씨가 주도한 생일파티에 초대된 손님들이었다. 이모(32)씨도 모임을 주도했다. 모임에 참석한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마약을 해봤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
이윽고 생일파티를 구실로 한 한밤의 '마약파티'가 시작됐다. 부엌 테이블 위엔 엑스터시(MDMA)와 케타민(마취제의 일종)을 비롯한 각종 마약류가 놓여 있었다. 대마초, 그리고 연기를 만들 파이프도 준비됐다. 이들은 마약을 코로 흡입하거나 삼켜 먹었고, 대마를 흡연했다고 한다.
그러나 집단 쾌락의 종착점은 비극이었다. 새벽까지 이어진 파티는 이튿날 오전 5시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끝났다. 참석자 중 한 명이 14층 집 창문에서 떨어져 숨진 것이다. 일행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사망자 신원 파악에 나섰고, 숨진 이가 강원경찰청 소속 A경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용산 아파트 경찰관 추락 사건'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사건의 시작은 생일모임 2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월 13일 오전 2시 15분 모임 주도자 이씨는 용산에 있는 지하 펍에서 마약 판매상을 만나, 76만 원을 주고 엑스터시 4정과 케타민 2g 등을 샀다. 모임 때 투약할 마약을 미리 준비한 것이다. 정씨가 자기 집을 모임 장소로 제공했고, 참석자 중 한 명인 김모(32)씨는 파티에 참석할 초대 명단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파티에 초대된 25명의 남자들은 '마약' 외에는 별다른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직업도, 거주지도 가지각색이었다. 연령대도 30대 초반부터 40대 중반까지 다양했고, 사는 곳 역시 중구, 관악구, 용산구 등 각지에 퍼져 있다. 모임을 주도한 정씨는 요식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였고, 이씨는 대기업 회사원이었다. 헬스트레이너, 응급의학에 조예가 깊은 사회복지 전공 대학원생, 수의사도 포함됐다. 이들은 나중에 '운동 동호회 멤버'로 모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 모임엔 예전에 이미 마약을 구하고 투약한 경험이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사망한 A경장 역시 사건 두 달 전인 6월 17일 지인인 문모(36)씨로부터 현금 72만 원을 주고 케타민 3g을 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모임 장소를 제공한 정씨 역시 마약으로 집행유예 전과가 있다. 경찰은 모임과는 별개로 A경장의 휴대폰을 조사하면서 마약 판매자인 문씨가 작년 2월과 4월 서울에서 케타민과 엑스터시를 흡입하고, 소지한 혐의도 발견했다.
사망한 A경장은 마약에 취한 채 홀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추락 당시 그가 있던 방에는 아무도 없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A씨의 주된 사인은 '강한 둔력에 의한 치명적 손상'으로 밝혀졌다. 14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과정에서 생긴 충격으로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예컨대 몸싸움을 벌였다든지 해서 생긴 상처들은 시신이 손상돼 확인이 어려웠다. 경찰은 마약 이외 범죄 혐의점은 없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A경장이 추락한 후 참석자 일부는 아파트를 재빨리 빠져나갔다. 그래서 나중에 경찰은 참석자를 색출하는데 애를 먹었는데, 처음에 드러난 건 8명이었지만, 이틀 뒤엔 8명, 일주일 뒤엔 5명, 그 뒤에 4명이 더 있었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추가로 확인됐다. 결국 한 달이 지나서야 A경장을 포함해 총 25명이 있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 관계자는 "아파트 주요 폐쇄회로(CC)TV가 고장나 있는 부분들이 있어 확인이 늦어졌다"며 "관련자들이 추가 참석자 여부에 대해 진술을 함구했던 영향도 있다"고 밝혔다.
수사가 시작되자 이들에게선 마약류 투약의 흔적이 묻어나왔다. 필로폰, 케타민, 엑스터시, 코카인 등 투약 마약류의 종류도 다양했다. A경장에게서 나온 마약류만 최소 4가지나 된다. 이중 눈에 띄는 건 '플루오르-2-오소(Oxo) PCE'라는 이름의 신종약물. 일명 '천사의 가루'로 불렸던 이 마약류는 자살 등 부작용이 심각해 사용이 중단됐지만, 최근 국내에서 드물게 적발되고 있다. 수사당국은 신종마약 비교 분석을 위해 샘플을 미국에서 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4-메틸메스케치논' 역시 신종 마약인데, 러시아 마약 '뮬까'로 알려진 메스케치논과 비슷한 물질이다.
경찰은 마약을 입수한 경로로 이태원의 한 클럽을 지목했다. 해당 클럽은 A경장과 모임 참석자들이 다녀온 곳으로, 이들이 클럽에서 열린 파티에 다녀온 뒤 사건이 벌어진 아파트로 이동한 사실이 밝혀졌다. 경찰은 이곳을 압수수색하고, 인근 클럽에 대해서도 단속에 나섰다. 마약 유통 창구가 된 클럽의 마약 실태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경찰의 압수수색 이후 찾아가 본 이태원 클럽거리에는 실제로 투약을 짐작케하는 요소들이 눈에 띄었다. 거리는 온통 담배 냄새와 함께 대마초로 추정되는 쑥냄새, 물담배 냄새가 뒤엉켜있었다. 클럽에서 만난 남성 B(28)씨는 마약을 구하려면 '이곳'에 가면 된다며 인근 클럽을 지목하기도 했고, 특정 인물을 언급하며 "마약이 필요하면 이 친구에게 물어보라"고 알려주는 인물도 있었다.
어느 정도 마약파티와 경찰관 사망에 관한 실체가 드러나고는 있지만, 풀리지 않은 의혹도 여전하다. 이들이 신종마약을 누구를 통해 어떻게 구했는지, 다른 마약을 더 투약한 적이 있는지, 비슷한 모임을 가진 적이 있는지 등은 경찰이 더 밝혀야 할 부분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폭넓게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마약 참석자 25명 중 6명만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나머지 참석자는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법정에 선 6명은 반성과 후회를 거듭했다. 모임 주도자 정씨는 "한순간의 실수로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고, 주변에서도 놀라 충격을 받았다"며 "(마약한 걸) 정말 부끄럽게 생각하고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일행의 추락사에 충격을 받고 정신과 상담을 받았고, 단약을 위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절대 마약에 손 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 둔 상태로 "마약 범죄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며 선처를 구했다.
검찰은 지난달 20일 마약 모임을 주도해 구속된 이씨와 정씨에게 각각 징역 8년,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이들과 함께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기소된 D(32·징역 6년), E(31·징역 3년), F(40·징역 5년), G(35·징역 4년)씨에게도 징역형이 구형됐다. 이들에 대한 선고는 다음달 7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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