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광대무변한 세계

입력
2024.01.22 04:30
27면

고전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미국의 펭귄북스에 들어간 우리 고전소설 '구운몽'을 검토할 일이 생겼다. '구운몽'은 17세기 말 김만중이 지은 작품이다.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이 여덟 선녀를 만나 희롱한 죄로 인간 세상으로 쫓겨나는데, 양 처사의 아들 양소유로 태어나 이처팔첩(二妻八妾)과 함께 호사스러운 생애를 누린다. 물론 하룻밤 꿈이었다. 그런데 번역본에서 인명 같은 고유명사가 모두 중국어 식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육관대사는 Master Liu-kuan, 양소유는 Yang Shao-yu, 성진은 Hsing-chen과 같은 식이다.

처음 보는 순간 무척 당황스러웠다. 당나라 때의 중국이 시대 배경이고 무대 또한 중국이다. 육관대사의 거처가 형산 연화봉이니 지금의 후난성(湖南省)이고, 양소유가 태어난 곳은 회남 수주현이니 지금의 안후이성(安徽省)이다. 그래서 번역자는 인물 또한 중국 사람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여긴 듯하다. 양소유가 처음 만나는 진채봉을 Ch’in Ts’ai-feng이라 적은 데 이르면 더 말할 나위 없다. 펭귄북스의 '구운몽'은 영락없이 중국 소설처럼 읽힌다.

작품의 정체성을 따지는 일은 다른 기회로 미루겠다. 결론만 말하자면 인명 지명 모두 우리 식으로 표기하여야 했다. 우리 고전 소설은 중국과 특수한 문화적 관계를 가지고 탄생하며 읽혔다. 작가는 소설의 무대를 설정하되 중국을 하나의 세계 속에 있는 공간으로 그리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심청전'의 무대 공간은 조선과 중국을 하나로 보는 전체이다. 독자 또한 그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흥부네 살던 제비가 겨울나러 가는 강남은 마치 옆 동네 같다.

이런 세계관을 설명하기 좋은 예화가 '삼국유사'에 있다. 옛날, 당나라 황제가 연못을 하나 팠다. 매달 보름밤이면 사자처럼 생긴 산의 바위 하나가 연못 가운데 나타났다. 황제가 화공더러 그 모습을 그리게 하고, 사신을 시켜 천하를 돌며 찾게 했다. 우리나라에 이르러 아주 닮은 바위가 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몰라 신발 한 짝을 그 정상에 걸어놓고 돌아가 살폈다. 보름밤이 되자 과연 신발 걸린 바위 그림자가 연못에 나타나지 않는가. 황제는 기이하게 여기며 백월산이라 이름 붙였다. 그런 다음 연못에는 그림자가 사라졌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나오는 이야기의 서막이다. 백월산은 지금 경남 창원시에 있다. 신라와 당나라의 하늘을 연결하는 스케일이 얼마나 시원스러운지, 적어도 우리 조상이 가진 상상의 품이 그렇게 넓었다고 나는 이해한다. 근대적 개념의 우리 시대에서는 국경처럼 생각도 나뉘겠지만, 상상하고 누리는 한의 광대무변(廣大無邊)을 무대 삼아 뛰놀던 옛날이었다. 반도의 반쪽에 섬처럼 갇힌 채 살아온 분단 80년이 우리를 옹졸하게 만든다.



고운기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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