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것을 해석하려는 우리…본 대로 느끼면 그만

입력
2024.01.19 18:00
11면

리처드 브라우티건 '워터멜론 슈가에서'

편집자주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

워터멜론 슈가에서·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비채 발행·252쪽·8,900원

워터멜론 슈가에서·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비채 발행·252쪽·8,900원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일을 해서 먹고산다. 수업하면서 느끼는 여러 보람이 있지만 학생들에게 내가 좋아하거나 좋아했던 책과 영화를 보여주고 그 반응을 살피는 것이 재미 중 하나다. 학년이 바뀌고 가르치는 아이들이 바뀌어도 꼭 함께 보는 몇 편의 책과 영화가 있다. 여러 리스트가 있지만 학년이 끝나갈 때야 보여주는 것들이 있다. 영화는 코엔 형제의 ‘시리어스맨’, 책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워터멜론 슈가에서’다. 학생들에게 호불호가 갈리는 편인데 그걸 보는 게 즐겁다.

‘워터멜론 슈가에서’는 워터멜론 슈가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공간의 모든 것은 워터멜론 슈가(문자의 뜻은 수박 설탕)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곳에선 매일매일 다른 색의 해가 뜬다. 그리고 그 태양의 색을 닮은 워터멜론이 자라난다. 이곳엔 ‘아이디아뜨(iDEATH)’라는 마을과 ‘잊힌 물건들’이라는 아이디아뜨 사람들이 꺼리는 구역, 고작 몇 인치밖에 되지 않지만 ‘강’이라 부르는 공간들이 존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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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한다’는 말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의 모든 것이 너무나 명백한 허구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졸고 있는 천사처럼 행동한다. 졸고 있는 천사는 좀체 뭘 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불륜을 저지르고, 누군가 자살을 하고, 호랑이에게 부모가 먹히고… 그들은 아름답게 슬퍼한다. 그들은 천사이고 그곳은 천국이다. 천국은 아름답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그런 것을 본다.

학생들에게 이 작품을 소개하면 도대체 뭔 말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돌아올 때가 많다. 학생들은 상징과 비유의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 그러면 나는 말하는 것이다.

“매일매일 다른 태양이 뜨는 곳이 있어. 상상해 봐. 목요일엔 검은 태양이 뜨고 소리가 사라져. 그곳 사람들은 완전한 침묵 속에서 장례를 치르지만, 곧 있을 댄스파티를 기다려. 어떤 곳인 것 같아?”

학생들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모르겠다는 표정이지만 그들의 머릿속엔 아름답고 고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들끓는 마음이 갈 곳 없는 저마다의 장소가 그려지고 있는 듯하다. 그럼 나는 답한다. “네가 본 그대로야.”

마지막 수업을 할 때 늘 하는 말은 본 대로 느끼면 된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본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굳이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해석해 내려고 하지 않는가. 세계의 의미에 대해서, 삶의 가치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그런 것이 필요한 때도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을 읽을 때 그런 방식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학생들과 나누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런 부분이고, 또 한 해의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송지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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