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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스페인어권의 무망한 자존심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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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물론 이견도 있다. 당시 스페인과 영국은 삼엄한 적대관계였다. 둘은 각각 가톨릭과 개신교 거점국가로서 종교적으로 서로를 배척했고, 해외 식민지 패권을 두고 정치-군사적으로도 맞섰다.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 해군과 북서유럽 해안에서 맞붙어 체면을 구긴 게 1588년 일이다.
'돈키호테' 1권 영어판본이 정식 출간된 1612년 당시 셰익스피어는 이미 절정의 명성을 구가하고 있었다. “잉글랜드는 넘겨도 셰익스피어는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1603년 숨졌다. 그런 셰익스피어였으니, 풍문으로 '돈키호테'를 알았을 수는 있어도 스페인어에 능통하지 않았던 그가 굳이 해적판까지 구해 읽었을 리는 없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1610년 고향 스트랫퍼드로 귀향하며, 희곡 집필 등 모든 작품 활동을 중단한 채 사실상 은퇴했다고 알려져 있다.
문제는 1613년 런던의 한 극단이 공연한 ‘카르데니오의 역사(The History of Cardenio)'라는 작품이다. '돈키호테'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광인 청년 카르데니오의 에피소드를 모티브로 삼은 그 희곡이, 영국 왕실의 허가를 받아 모든 출판물을 관리하던 당시 출판 길드의 자료에 따르면 셰익스피어와 존 플레처라는 희곡 작가의 공동 작품으로 등재된 것. 희곡 ‘카르데니오’는 알 수 없는 사연으로 유실돼 1623년 셰익스피어 첫 전집에도 실리지 않았다.
일부는 저 희곡을 근거로 셰익스피어가 '돈키호테'를 읽었으리라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관행상 연극 흥행을 위해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무단 도용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사라진 희곡에 대한 학술 연구 논문도, 본격 추리 작품도 있는 모양이다.
누가 누구의 작품을 읽었느냐의, 확정적 근거도 없는 사소한 문제가 오랫동안 꽤 진지하게 회자되는 까닭은 '돈키호테'의 풍차 괴물처럼, 거기서 양대 언어권-문화권의 자존심을 찾으려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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