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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 혹한은 트럼프 편? “헤일리 좋지만… 투표는 안 할래요”

입력
2024.01.15 04: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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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화당 첫 경선지 르포] 날씨의 역습
폭설·강풍·혹한 겹쳐 유세·투표 모두 지장
지지율 3위 처진 디샌티스, ‘충성도’ 최강

13일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의 포트디모인 호텔에서 온라인 유세를 하고 있는 공화당 유력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코커스 캡틴'(당원대회 주장) 모자를 쓴 적극 지지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디모인=AP 연합뉴스

13일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의 포트디모인 호텔에서 온라인 유세를 하고 있는 공화당 유력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코커스 캡틴'(당원대회 주장) 모자를 쓴 적극 지지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디모인=AP 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시작을 알리는 아이오와주(州) 코커스(당원대회) 이틀 전인 13일(현지시간). 기자가 탄 항공기가 아이오와 주도(州都) 디모인에 위치한 국제공항에 착륙한 시간은 예정 시간보다 36분 늦은 오후 3시 15분이었다. 비행기는 땅에 닿고도 완전히 멈출 때까지 활주로를 20분 가까이 천천히 움직였다. 지나가는 길마다 바닥에 깔린 눈이 공중에 떠올라 흩날렸다. 창밖은 온통 하얬다.

헤일리 지지율의 거품?

도심에도 다니는 차가 별로 없었다. 우버 기사인 미얀마 출신 미국인 아웅 윈(50)은 2009년 디모인으로 이주했다. 공화당원이라는 그는 15일 코커스에 참여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투표할 생각이라고 했다. 왜냐고 묻자 “비즈니스맨(기업가)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너무 심해졌어요. 그게 전부도 아니죠. 경제를 회복시킬 사람은 트럼프뿐이에요.”

호텔 프런트 직원인 백인 여성 데스티니(23)는 ‘공화당원이냐’라는 질문에 “그렇기는 해도 난 리버럴(자유주의자)”이라고 말했다. 그는 “리버럴이라고 모두 민주당원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코커스에는 갈 계획이 없다. 호감을 느끼는 대선 주자는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대사인데, 그렇다고 ‘헤일리 아니면 안 된다’고 여길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싫은 것은 분명하다. “트럼프만 아니면 좋겠다”는 게 데스티니의 심정이다. 그러면서 그는 “불행하게도 (공화당 대선 후보는) 트럼프가 될 것 같다”며 씩 웃었다.

13일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 국제공항 출입구 앞 노변에 전날 폭설로 주차하기 어려울 정도의 눈이 쌓여 있다. 디모인=권경성 특파원

13일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 국제공항 출입구 앞 노변에 전날 폭설로 주차하기 어려울 정도의 눈이 쌓여 있다. 디모인=권경성 특파원

공화당 경선은 이제 사실상 삼파전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줄곧 크게 앞서 나가고 있지만, 최근 기세가 좋은 헤일리 전 대사도, 한때 유력한 ‘트럼프 대항마’로 꼽혔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도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볼 참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악재가 불거졌다. 날씨였다.

폭설로 유세 기회를 상실한 것은 세 후보 모두 마찬가지다. 선두 주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13, 14일 진행하려던 대면 유세 4건 중 ‘14일 일정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온라인 유세로 돌렸다. 그러나 그에겐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게 미국 언론의 분석이다. 2016년 대선 후보 경선 때 지지율을 과신하다 첫 아이오와 경선에서 당한 패배를 반면교사 삼았고, 이번에는 표 단속을 위해 조직을 동원하는 선거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미국 민주당·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일정. 그래픽=송정근 기자

미국 민주당·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일정. 그래픽=송정근 기자

이에 비해 선두 추격과 2위 싸움을 병행해야 하는 헤일리 전 대사, 디샌티스 주지사는 여유가 없다. 특히 99개 카운티를 모두 방문할 정도로 아이오와에 공을 들이고도 헤일리 전 대사에게 지지율이 따라 잡힌 디샌티스 주지사로선 막판 기회 하나하나가 아쉬운 상황이다. 전날 “안전하기를 바란다”며 행사 4건을 연기했던 그가 이날 동서 440마일(약 700㎞)을 횡단하는 강행군을 감수한 이유다. 지난해 11월 말에야 겨우 조직이 갖춰져 ‘지상전’에 가장 늦게 합류한 헤일리 전 대사는 역부족을 절감하는 기색이다. 0.3m 가까이 쌓인 눈을 무릅쓰며 조직원들이 열심히 초인종을 누르고 있지만, 곳곳에서 트럼프 캠프 흔적을 발견하고서는 좌절감을 느끼곤 한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디샌티스, 날씨로 반전할까

헤일리 전 대사에게 날씨가 더 골치 아픈 것은 코커스 당일이다. 예보에 따르면 코커스 당일(15일)에는 아이오와 기온이 섭씨 영하 30도까지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 혹한에 강풍이 겹치면 체감 온도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코커스는 다른 대부분 주에서 채택하고 있는 단순 투표 방식의 프라이머리(예비선거)와 달리 번거롭고 품도 많이 든다. 토론 방식이어서다. 저녁에 정해진 장소에 모여 지지 연설을 듣고 난 뒤에야 투표가 가능하다.


니키 헤일리(오른쪽) 전 주유엔 미국대사가 10일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TV토론 도중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바라보고 있다. 디모인=AP 뉴시스

니키 헤일리(오른쪽) 전 주유엔 미국대사가 10일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TV토론 도중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바라보고 있다. 디모인=AP 뉴시스

헤일리 전 대사의 지지율 흐름은 여전히 좋다. 이날 공개된 아이오와 지역매체 디모인레지스터와 NBC뉴스, 미디어컴의 아이오와 유권자 대상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48%를 확보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이어 20%를 기록했다. 16%에 그친 디샌티스 주지사를 2위 싸움에서 누르고 트럼프 전 대통령 과반도 저지했다. 그러나 데스티니는 헤일리 전 대사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 준다. 헤일리 전 대사를 지지한다는 응답자 중 그를 열정적으로 돕겠다는 의향을 가진 이의 비율은 9%에 불과했다. 반면 디샌티스 주지사 지지층의 경우, 충성도가 최강 수준이다. 62%가 코커스에 가서 표를 던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꾸준한 조직력의 힘이라는 게 WP의 해석이다.

아이오와 코커스의 관전 포인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과반을 득표하느냐, 그리고 누가 2위를 꿰차느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50% 이상 지지를 확보하면 ‘반(反)트럼프’ 진영이 단일화하더라도 이길 수 없는 철옹성 이미지를 갖게 된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아이오와에서 헤일리 전 대사를 큰 격차로 따돌리지 못할 경우, 향후 경선 과정에서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디모인(미국 아이오와주)= 권경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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