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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290만 명 구제, 만성적 신용사면 문제 없나

입력
2024.01.13 04:30
19면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서민·소상공인에게 힘이 되는 신용사면 민·당·정 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서민·소상공인에게 힘이 되는 신용사면 민·당·정 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과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역대 최대 규모 신용사면에 나선다. 2021년 9월부터 올 1월까지 2,000만 원 이하 연체자 중 채무 상환자가 대상이다. 연체가 남아 있어도 5월 말까지만 상환하면 된다. 대상자가 290만 명으로 추산된다. 2000년 1월(32만 명), 2001년 5월(102만 명), 2021년 10월(228만 명) 등 앞선 3차례 신용사면 규모를 훌쩍 넘어선다.

정부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차주들이 보릿고개를 잘 넘게 해주자는 차원에서 신용사면을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코로나19 때는 차주들의 도덕성 문제보다 본인이 통제하기 어려운 이유로 연체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선 신용사면(2020년 1월~2021년 8월 대상) 이후 발생한 모든 소액 연체 기록이 대상이다. 연이은 신용사면으로 구제기간이 2020년 1월부터 무려 4년이 넘는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실하게 대출금을 갚아온 이들로서는 허탈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두 차례나 뒤통수를 맞았다”는 푸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원이 2021년 사면을 받은 24만6,000명을 추려 살펴보니 30%가 넘는 7만4,000명이 다시 장기연체(90일 이상)에 빠졌다고 한다. 2021년에 이어 이번에도 사면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금감원은 사면을 받지 못한 연체상환자는 재연체율이 31%라는 통계를 들어 도덕적 해이 우려는 없다고 하지만, 신용사면에도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는 해석이 더 옳을 것이다.

금융당국 압박에 은행들이 자영업자들에게 2조 원 규모 지원방안을 내놓은 게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취약계층이 많이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신용 질서를 흔들 만큼 절박한 상황이라 보긴 어렵다. 피해는 성실한 차주에게 전가된다. 연체기록이 없으니 은행들은 정상 채무자의 금리를 높이고 한도는 줄일 수밖에 없다. 만성 신용사면으로 취약계층 면역력을 약화시킬 게 아니라 대출 없이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길러주는 방안을 고민하는 게 정부의 올바른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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