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주기' 터치하니, 로봇이 현실서 물 주네...더 실감 나는 게임 속 전원 생활

입력
2024.02.09 14:00
16면

게임과 현실 연결해 식물 기르는 헬로, 팜!
농장 운영 게임, 현실 세계 접목
가상 식물 기르고 현실 반려 식물까지
게임과 기술 사이 절충점은 고민
현실 '팜셀'서도 로봇이 재배

2023년 상반기 시뮬레이션 게임 장르에서 로블록스에 이어 2위의 수익을 올린 'Township(꿈의 마을)'. Playrix 제공

2023년 상반기 시뮬레이션 게임 장르에서 로블록스에 이어 2위의 수익을 올린 'Township(꿈의 마을)'. Playrix 제공


롤플레잉게임(RPG)이 지배하다시피 하는 게임 업계에도 숨은 강자가 있다. 10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끄는 마인크래프트, 로블록스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둘 말고는 눈에 띄는 게임이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이 역시 틀렸다. 2023년 상반기 시뮬레이션 게임 장르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기록한 상위 5개 중 3개는 농장 운영 게임이었다. 셋 모두 마인크래프트의 수익을 앞질렀을 정

농장 운영 게임은 오랜 기간 높은 인기를 누린 만큼 오랜 기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초창기 농사 게임은 가상 공간 속에서 농사를 짓고 컨텐츠를 즐기는 '전원생활'이라는 틀을 유지했다.


2020년 국내에 발매된 '천수의 사쿠나히메'. 닌텐도 공식사이트 캡쳐

2020년 국내에 발매된 '천수의 사쿠나히메'. 닌텐도 공식사이트 캡쳐


이후 계절 정보나 작물 고증, 작물의 판매량 등 게임 외 정보를 깊이 있게 다루는 사례도 나왔다. 2020년 국내에 발매된 일본 게임 '천수의 사쿠나히메'는 깊이 있는 벼농사 고증으로 눈길을 끌었다. 벼농사 정보를 확인하려고 게임 이용자들이 농촌진흥청 누리집에 몰리며 서버가 마비됐다.

그런 가운데 가상 공간의 농장을 현실과 접목하려는 시도가 등장했다. 모바일 게임 '검은 복도' 등으로 알려진 셈스게임즈는 지난해 11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에 메타버스를 바탕의 농장 운영 게임인 '헬로, 팜!'을 공개했다.



가상 공간에서 기르고 현실에서 받아보는 헬로, 팜!

지난해 11월 펀딩사이트에 공개된 헬로팜. 셈스게임즈 제공

지난해 11월 펀딩사이트에 공개된 헬로팜. 셈스게임즈 제공


헬로, 팜!이 기존 게임과 다른 점은 게임 속에서 기른 식물의 상황이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로 이어져 현실 세계에 적용된다는 점이다. 게임의 공간은 ①팜셀(현실 세계에서 실제 식물이 자라는 공간) ②메타팜(현실과 연동된 메타버스 농지) ③팜테라(게임 배경)의 세 가지로 나뉜다.



싱고니움 핑크스팟 등이 자라고 있는 팜셀의 모습. 게임에서 물을 주면 연동된 로봇이 지정된 식물에 자동으로 물을 주는 스마트팜의 형태를 띠고 있다. 셈스게임즈 제공

싱고니움 핑크스팟 등이 자라고 있는 팜셀의 모습. 게임에서 물을 주면 연동된 로봇이 지정된 식물에 자동으로 물을 주는 스마트팜의 형태를 띠고 있다. 셈스게임즈 제공


알파테스트가 진행 중인 현재는 펀딩에 참여한 후원자는 △몬스테라 알보 △필로덴드론 버킨 △싱고니움 핑크스팟 등 다섯 종의 식물을 받는다. 후원자는 '메타팜'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분양받은 식물에 물을 주거나 관찰할 수 있다. 아직 초기 단계로 앱 내에서 '물 주기'나 '식물 보기' 버튼을 누르면 기계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모든 과정이 화면에 실시간으로 송출된다.

이용자가 메타팜에서 물을 주면 자체 개발한 로봇이 팜셀의 식물에도 물을 준다. 메타팜에서 길러지는 '가상 식물'은 게임에선 아이템으로 여겨져 팜테라의 몬스터를 자동으로 사냥해준다. 팜셀에서 길러진 '실제 식물'은 복지단체에 기부하거나 집에서 받아볼 수 있다. 터치 한 번으로 가상 공간과 현실 세계의 식물을 동시에 기르는 셈이다.



메타팜에서 재배 중인 필로덴드론 버킨. 우측 상단의 스트리밍 기능을 이용해 물을 주는 모습 등을 지켜볼 수 있다. 셈스게임즈 제공

메타팜에서 재배 중인 필로덴드론 버킨. 우측 상단의 스트리밍 기능을 이용해 물을 주는 모습 등을 지켜볼 수 있다. 셈스게임즈 제공


안정훈 셈스게임즈 대표는 "자신의 식물에 애착을 가질 수 있게 게임 내 의사 소통 기능과 식물 프로필 촬영 등 이벤트를 할 예정"이라며 "대파 등 식용 작물 시험 재배도 끝내 식물의 종류를 늘릴 계획"이라고 전했다.



게임과 현실 연동, 선례 있지만 절충점은 고민

2012년 네오게임즈가 발매한 레알팜. 구글 플레이스토어 캡쳐

2012년 네오게임즈가 발매한 레알팜. 구글 플레이스토어 캡쳐


이미 이커머스 업계를 중심으로 미니게임을 통해 농산물을 보내주는 마케팅은 대중화됐다. 이커머스 업계의 게임화 마케팅 이전에도 가상공간에서 작물을 기르고 집으로 실제 작물을 배송받는 것을 뼈대로 한 게임이 있었다. 출시된 지 10년이 넘은 네오게임즈의 '레알팜'이다.

레알팜을 게임을 하면 실제 농산물을 보내주는 게임으로 잘 알려졌다. 게임 내에서 작물을 성공적으로 재배하면 교환권을 얻을 수 있는데 교환권을 일정 매수 이상 모으면 쌀과 채소 등 작물을 비롯하여 한우, 한돈 등의 식재료를 제공했다. 다만 2022년부터는 이러한 방식의 상품 제공에 제동이 걸렸다.

레알팜은 2022년 이전까지 공정거래위원회의 경품 고시 기준에 따라 경품을 제공해왔지만 당시 P2E(Play to Earn) 게임 전반에 규제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경품 제공 방식을 두고 논쟁이 일었다. 네오게임즈 측은 게임산업진흥법(게임법)을 기준으로 경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며 "게임법이 수정되기 전까지 레알 쿠폰으로 실물 상품을 신청하는 형태는 중단하겠다"고 알렸다.

게임법 28조는 경품 등을 제공해 사행성을 조장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특히 유통 기한이 있는 음식물 등 경품은 제공할 수 없다고 정해 그동안 네오게임즈가 제공했던 식료품이 직접적인 제한 범위에 포함됐다. 안 대표는 "식용 식물의 경우 식품으로 가공되지 않은 모종 단계의 식물이 제공될 것"이라며 헬로, 팜!의 식물 제공은 확률형 뽑기가 아닌 가상 농지와 식물을 직접 구매하는 방식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다만 원은석 목원대 교수는 "정부가 게임 자산이 현물로 거래, 제공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며 "레알팜 등 선행 사례가 있기 때문에 관련 규제 해결을 위해서는 게임과 시뮬레이션 기술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와 가상 잇는 게임... 상호작용 구현이 승패 열쇠

바나나 하우스의 게임플레이 장면. 셈스게임즈 제공

바나나 하우스의 게임플레이 장면. 셈스게임즈 제공


셈스게임즈는 이전에도 제주도 바나나 농장과 함께 실제 생육 환경이 가상의 바나나 농장과 연동되는 '바나나 하우스'라는 앱을 개발해 펀딩에 성공했다. 농장의 습도와 온도, 날씨 등을 가상 농장에 구현해 바나나 스마트팜을 체험하는 것이 뼈대다. 가상과 현실의 연결이라는 점에서 헬로, 팜! 개발도 그 연장선에 있는 셈이다.

안 대표는 "실물과 가상의 연동 작업에 관심이 많았다"며 "거주 공간과 환경의 문제로 식물을 기르기 힘든 사람에게도 안성맞춤"이라고 자신했다. 안 대표는 게임 출시 이후에도 자체 개발한 식물 재배 로봇과 소프트웨어 등을 학교와 교육 단체 등에 제공해 교육용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알파 테스트에 참여해 싱고니움 핑크스팟을 분양받은 김혜민(35)씨는 "작은 화분을 집에서 길러본 적 있지만 금방 죽어 속상했다"며 메타버스 기술로 적절한 환경에서 기른 식물을 실제로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느림의 상징인 식물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며 "애착이 생겼다면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관심도를 채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상호작용이 가능한 게임에서는 기술적 구현도 현실과 연동성에 따라 상당한 몰입도를 느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원 교수는 이용자 집단이 크지 않은 만큼 유저 간 소통과 커뮤니티 구현 등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교육 등 연관 분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과습 등 고의로 식물을 죽이는 행위를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들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창경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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