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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신 사이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 차별받는 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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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자 박정수는 책 '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에서 널리 알려진 질문을 던진다. '아침에는 다리가 넷, 점심에는 다리가 둘, 저녁에는 다리가 셋인 것은?' 답은 '인간'이다. 태어나자마자 네 발로 기다가, 두 발로 걷다가, 몸이 쇠하면 지팡이를 짚고 걸어야 하는 인간 신체의 취약성을 빗댄 수수께끼다. 그리스 비극 속 괴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건 오이디푸스. 지혜롭지도, 똑똑하지도 않았던 그가 손쉽게 문제를 풀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부은 발'이라는 뜻의 그의 이름에 답이 숨어 있다. 그는 장애 당사자였던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어릴 때 발목이 묶인 채로 버려져 신체 장애인이 됐다. 성인이 돼서는 부친 살해와 근친상간의 죄과로 스스로 눈을 찔러 시력도 잃었다. 수수께끼가 오이디푸스로 하여금 장애 있는 몸의 취약성과 배제, 차별의 경험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란 게 저자의 해석이다.
저자는 왜 하필 그리스 비극과 장애를 연결 지었을까. 책은 등장인물들의 장애가 어떤 운명적 요소로 작용했는지 보여준다. 이를테면 올림포스 신 가운데 소수자들의 사랑을 받은 디오니소스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인간인 어머니의 몸에서 한 번, 신인 아버지의 몸에서 한 번 태어난 그는 신도 인간도 아닌 존재로 취급받다가 올림포스에서 유일하게 장애가 있는 신 헤파이스토스를 설득해 헤라 여신을 풀어준 공로로 신이 된다. 이런 서사가 여성, 트랜스젠더, 장애인, 노인 등 차별과 모욕을 받았던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이나데스라고 불린 디오니소스 신도들은 강력한 공동체를 이루며 가부장 체제에 저항했다.
소포클레스 비극의 주인공 안티고네는 어떤가. 가부장제를 대표하는 인물인 크레온과 대치하는 여성 안티고네는 자신이 친족을 매장한 것이 크레온의 명령보다 위에 있는 '신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해 동굴에 갇힌다. 안티고네는 이후 "나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하며 가부장 제도에 적극 저항한다.
저자가 장애의 관점으로 비극을 파고들어 간 이유는 장애가 비극이기 때문이 아니다. 장애인들이 장애를 분명히 인식하고 삶을 스스로 끌고가는 과정에서 그 결핍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삶이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의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자극적이고 통속적인 이야기가 가득한 그리스 비극의 새로운 면모가 보인다. '왜 여성, 소수자, 장애인이 급진적일 수밖에 없는 가'에 대한 더없이 진지하고 유쾌한 해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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