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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파크 조선'이 된 서울...한옥마을에서 무엇을 기억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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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제가 된 사건 중 하나는 경복궁 영추문 주변 낙서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영추문이 1975년 완전히 새로 지어졌고, 지금의 영추문을 허물고 원래 위치에 제대로 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그러면 낙서 사건으로 인한 국민적 분노, 정성스러운 복원 작업이 염두에 둔 것은 조선 시대인가, 박정희 시대인가. 정답은 역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마음이다.
세계 각국 도시의 역사적 경관 보존 문제를 다루는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는 그 마음을 네 글자 단어 '테마파크'로 정리해뒀다. 비꼬는 얘기가 아니다. 알 만한 사람은 알지만 괜히 흥을 깨기 싫어 하지 않는 얘기를 입 밖에 내는 것은,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보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그는 서문에다 예전에 보전 작업이 '있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매달렸다면 이제는 "오늘날의 서울 북촌처럼 사진과 영상을 통해 소통하는 젊은 세대를 위한 테마파크를 만드는 것도 시대의 흐름에 어울리는 방식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써뒀다.
보존, 복원은 늘 이런 문제에 시달려왔다. 소중한 역사를 잘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서사의 당위성이 강조될수록 있는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어서다.
미국인이지만 일본과 한국에 오래 살았고, 해외 여러 나라 도시를 숱하게 탐방해 본 저자는 그렇게 보존된 역사적 경관 뒤에 숨은 색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 모든 게 다 거짓말이라고 분노하고 손가락질하라는 게 아니다. 즐기긴 즐기되 진면목을 알고 즐기자는 얘기다.
우선 일본의 나라(奈良). 천황이 한때 살았던 도시라곤 하지만 그 기간이 74년 정도에 불과한, 그래서 인근의 교토나 오사카에 완전히 밀려난 작은 도시였다. 나라에 대해 대대적인 보존 복원 작업에 착수한 건 메이지 정부였다. 법이 만들어지고, 미술사 연구가 본격화되고, 옛 신이 타고 왔다는 사슴을 위한 공원이 만들어졌다. 근대화를 위해 서양 문명 흡수에 바빴던 메이지 정부는 '불교문화를 받아들여 고대 국가를 만든 천황'이란 이미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미국 동부 도시 윌리엄스버그도 그렇다. 초기 이주 시대 미국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도시로 유명하지만, 버지니아주의 초창기 주도였을 때를 빼곤 사실상 잊힌 마을에 가까웠다. 분위기가 바뀐 건 1920~1930년대. 급속한 산업화에 대한 반발로 옛 모습을 되찾자는 움직임이 일었는데, 이게 덜컥 대규모 복원 사업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급한 복원은 숱한 논란을 낳았다. "18세기라더니 19세기 풍의 건물이 더 많다" 같은.
미국 남부의 세 도시 찰스턴, 뉴올리언스, 샌안토니오 사례도 그렇다. 1920년대에 보존 운동이 불붙었는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보수적인 부유층 여성들이 흑인이나 히스패닉의 거주지를 사들여 그들을 몰아내는 방식으로 진행된 경우가 많았다. 드라마, 영화에서 흔히 접하는 전형적인 옛 남부 풍경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독일 드레스덴, 일본 히로시마, 오스트리아 빈, 중국 베이징 등 여러 도시의 풍경 이야기를 다양한 지도와 사진과 함께 풀어 나간다. 한국에선 북촌, 경주의 황리단길, 전주의 한옥마을을 다뤘다. 거기서 재현된 것,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고 '테마파크화된 풍경'을 마냥 긍정하거나 동의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미국 뉴욕의 '스톤월 인' 얘기를 끄집어낸다. 1968년 6월 28일 경찰의 동성애 단속에 맞서 성소수자들이 일어섰고 이는 오늘날 퀴어 퍼레이드로 이어졌다. 2016년 이 건물은 국립기념물로 지정됐다. 테마파크라 할지라도 기억할 대상은 좀 더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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