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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영적 정복(종교)의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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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는 군대로 식민지를, 종교로 피식민의 영혼을 통제했다. 착취-저항의 주요 갈등에 가려 덜 주목받았지만 제국의 두 권력, 군대와 종교 역시 저들끼리 불화하기도 했다. 식민지 총독이 가톨릭 대주교를 비리 등 범죄 혐의로 기소하고 대주교가 총독을 파문하고, 정치권력이 종교 권력에 총을 들이대고 종교 권력이 신자들을 동원해 폭동을 일으키는 내분 사태. 그런 일이 실제로 1624년 1월 15일 스페인 식민지 멕시코에서 빚어졌다. 승자는 가톨릭 교회였다.
왕실 경호대장을 지낸 스페인 기병대 장군 출신 카릴로 데 멘도사(Carrillo de Mendoza)가 당시 멕시코 총독이었다. 1621년 부임한 그는 치안에 힘쓰며 공직자 부패와 곡물 매점매석을 근절하는 등 상당한 개혁정책을 폈다고 한다. 최대 걸림돌이 현지 교회였고 교회와 결탁한 행정관료들이었다. 그가 멕시코시티 행정관을 부정 비리로 기소하자 행정관은 교회 수녀원으로 피신했고 교회는 면책특권으로 그를 보호하며 오히려 판사와 서기를 파문했다. 총독은 대주교 체포령과 동시에 본국 송환령을 내렸지만 교회는 신도들을 동원해 폭동을 일으켰다. 신도들은 총독궁에 불을 지르고 총독의 사임을 요구했다. 멘도사는 하인으로 변장한 채 간신히 탈출해 목숨을 건졌고, 본국 정부는 새 총독을 임명함으로써 종교 권력을 달랬다. 1519년 아즈텍 정복과 함께 시작된 약 100년 ‘영적 정복(the spiritual conquest)’의 위업인 셈이었다.
근년의 멕시코 가톨릭 신자는 전체 인구의 72~77%. 세속 권력과 교회의 힘겨루기는 1917년 헌법 130조(정교분리)로 일단락된 듯했지만, 교회 규제와 비리 처벌을 규정한 1926년 개정 형법(일명 Calles Law)에 반발한 가톨릭 농민들의 ‘크리스테로 봉기’ 등 종교권력의 저항은 꾸준히 이어져왔고, 2019년에도 정교분리법을 완화하기 위한 법개정 시도로 정쟁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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