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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기다리던 노부부 앞에 나타난 학대당한 회색 개의 ‘기적’

입력
2024.01.06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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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클로디 윈징게르 ‘내 식탁 위의 개’
60년간 숲속서 ‘자급자족’ 작가의 자전적 소설
노화하는 인간과 폭발적 생명력 개의 교류 그려

소설 '내 식탁 위의 개'의 학대당한 개 예스는 숲의 오두막에서 고요히 살아가던 노부부의 삶을 깨운다. 게티이미지뱅크

소설 '내 식탁 위의 개'의 학대당한 개 예스는 숲의 오두막에서 고요히 살아가던 노부부의 삶을 깨운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제는 너무 늦어버린 일들이 무수히 많았다. 숨차게 하는 것들. 눈물이 차올라 결국 얼굴을 적시게 하는 것들. 녹초가 될 정도로 일하게 하는 것들. 이제야 처음 겪는, 믿을 수 없는 일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겪는 일들. 그런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기억들을 한껏 껴안았다. 그것들에 작별을 고하며 잠이 들었다.”

내 식탁 위의 개-클로디 윈징게르

‘나이 듦’이란 이처럼 무언가와의 작별이다. 불과 몇 년 전에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가능했던 달리기나 수영, 등산은커녕 걷는 것조차 버거워진다. 어떤 인간도 노화 앞에서 예외란 없다.

84세의 프랑스 작가 클로디 윈징게르의 자전적 소설 ‘내 식탁 위의 개’에 등장하는 노부부 역시 매 순간 신체적 쇠퇴를 실감한다. “더없이 까다롭고 신랄하고 무뚝뚝한” 남편 그리그와 소설가인 '나' 소피. 추방당한 숲이라는 의미의 ‘부아바니’ 숲속 낡은 오두막에서 단둘이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이제 죽음을 향한 침잠만 남아있는 듯하다. 오늘이 인간과 나머지 종(種)에게 공포의 시대인 기후위기의 날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삶을 다채롭게 물들인 ‘인간 아닌 존재’

내 식탁 위의 개·클로디 윈징게르 지음·김미정 옮김·민음사 발행·396쪽·1만8,000원

내 식탁 위의 개·클로디 윈징게르 지음·김미정 옮김·민음사 발행·396쪽·1만8,000원

소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동식물이 멸종되는 혼돈과 파괴의 세상을 떠나 도피처에서 고요히 지내던 노부부의 집에 꼬질꼬질한 회색 털 뭉치 개가 나타나며 시작된다. 생식기는 처참히 찢긴 채 진물과 말라붙은 피로 끈적거리고, 뱃가죽엔 멍이 들어 학대의 흔적이 역력한 양치기 개에게 소피는 ‘예스(Yes)’라는 이름을 붙인다. 개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머릿속에 번개처럼 지나간 ‘그렇다, 나는 예스라고 말했다. 나는 동의할 것이다’라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의 마지막 문장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유 모를 폭력에도 삶을 긍정하는 개 예스를 향한 일종의 경의다.

소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등한 태도”로 자신을 바라보는 예스라는 작은 개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발견한다. 아침마다 먼저 잠을 깨 부부가 움직이거나 눈을 뜨기만을 기다리는 예스로 인해 그리그도 수십 년간 틀어박혔던 골방에서 나온다. 이들은 신문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침대에 누워 서로 몸을 찰싹 맞대고 예스에 대해, 또 우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노부부에게 “넘치는 기운에 감전될 것만 같은, 털로 뒤덮인 인간 아닌 존재”는 ‘우리 셋’이 같은 배낭 안에 담긴 기분과 기쁨을 함께 느끼게 한다. 인간은 다른 종과 다르지만 결코 분리된 존재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소피와 그리그를 종의 구분이 없는 식탁 위로 초대한 예스는 “함께 질주를 시작”한다. “아주 멀리는 아니더라도. 바깥을 열렬히 사랑하면서.”

70세에 데뷔한 작가 “여전한 ‘경이’를 보라”

클로디 윈징게르. 위키미디어

클로디 윈징게르. 위키미디어

‘내 식탁 위의 개’로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윈징게르는 소피처럼 1960년대부터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한 숲에서 남편과 함께 지내고 있다. 소비 사회를 떠나 양을 기르고 농사로 자급자족하는 그는 주로 자연을 주제로 자전적 작품을 써왔다.

2010년 70세의 나이로 첫 소설을 발표한 윈징게르의 작품은 그렇기에 지난 삶이 농축된 문장, 특히 노년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소피가 “스노드롭꽃 같은 내 손목과 앙증맞고 여성스러운 두 귀가 양옆에서 에워싼 흰담비 같은 내 목”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물 없는 꽃병에 꽂혀 일주일 만에 잊힌 한 송이 튤립같이 자잘한 주름”이라 읊조리는 순간은 노화를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찬란하게만 느껴진다.

소설은 이야기 전개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소피의 끝없이 이어지는 사유와 노부부의 일상 등을 파고든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 마치 시처럼 읽힌다. 이처럼 “여자와 암캐가 숲속을 함께 달리는 꿈을 꾸는” 이 소설에 2022년 페미나상이 주어진 건 당연한 귀결이다. 메디치상과 르노도상, 공쿠르상과 함께 프랑스의 4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페미나상은 여성 문인들이 남성 위주의 문학상에 반발해 1904년 제정했다.

“이제 모든 게 망하는 중이고, 출판사도 서점도 책도 자취를 감추게 될 텐데” 여전히 글쓰기를 믿는 ‘여성’ 작가 선생에게 주어진 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윈징게르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구멍이 난 채로 쪼그라들고 더러워졌는데도 여전히 남은 ‘경이’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고된 재앙 앞에서도 오늘을, 그리고 소멸하는 존재를 마음껏 사랑하는 일이 생태계의 지배종이었던 인간으로서의 책임일 것이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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