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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슬픔에 귀를 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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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슬픔 주제로 인터뷰… 미국 최초
미 CNN 간판 앵커 앤더슨 쿠퍼의 시도
언론이 슬픔에 귀를 댈 때 일어나는 ’치유’
기자가 물었다. “슬픔을 고맙게 여깁니까.” 대통령이 답했다. “아니오. 그렇지만, 내게 통찰을 주는 것 같긴 해요.” 대통령은 또 말했다. “슬픔을 반기는 사람이 과연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슬픔을 직시해야 합니다. 정말 힘든 일이죠. 하지만, 슬픔을 얘기해서 도움이 되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슬픔을 묻는 기자와 그에 답하는 대통령. 이례적이다. 미국 CNN의 간판 앵커인 앤더슨 쿠퍼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나눈 인터뷰다. 지난해 12월 6일 공개됐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 자신이 겪은 슬픔에 초점을 맞춰 인터뷰를 한 건 처음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972년 첫 아내와 생후 13개월 된 딸을 교통사고로, 9년 전엔 장남을 병으로 잃은 아픔이 있다.
더 놀라운 건, 바이든 대통령이 ‘온리 원’이 아닌 ‘원 오브 뎀’으로 인터뷰에 응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11월 시작한 팟캐스트 ‘앤더슨 쿠퍼와 함께하는 모두(All There Is with Anderson Cooper)’ 시즌2에서다. 2022년 9월 문을 연 슬픔에 관한 인터뷰 시리즈다. 영화배우 스티븐 콜베어, 코미디언 몰리 섀넌, 완화치료 전문의인 비제이 밀러 박사 등이 나왔다. 비행기 추락 사고나 교통사고, 자살 등으로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이들이다. 비슷한 비극을 겪은 청취자들의 인터뷰도 있다.
쿠퍼 역시 상실이 있다. 작가였던 그의 아버지는 쿠퍼가 열 살 때 심장마비로 작고했다. 형은 나이 스물셋에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몸을 던졌다. 5년 전 어머니마저 별세하면서 가족 중 쿠퍼만이 남았다. 팟캐스트는 그 죽음이 남긴 슬픔을 쿠퍼 스스로 돌아보는 데서 시작한다. 들춰본 적 없던 아버지의 유작을 읽기도 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형의 사진을 보며 흐느끼기도 한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슬픔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걸까요. 상실을 경험한 이들의 얘기를 듣고 싶어요. 그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1,000명이 넘는 청취자가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슬픔을 말할 공간이 없던 이들, 아직은 슬픔으로 괴로운 이들, 이제는 그 의미를 찾은 이들이 마음을 공유했다. 눈물범벅인 청취자의 음성을 들으며, 쿠퍼도 울먹인다. 그가 애초 계획에 없던 ‘시즌2’를 시작한 건 이런 반응 때문이다. 팟캐스트 안에서 모두는 그렇게 슬픔으로 연결됐다.
기꺼이 ‘슬픔을 듣는 귀’가 된 쿠퍼를 보며, 새삼 언론의 소명을 생각했다. 듣기보다 말하는 데 치중하는 언론에 회의가 들어서다. 배우 이선균씨의 자살로 경찰의 과잉수사는 물론, 사건을 중계하듯 보도한 언론에도 질타가 쏟아지는 건 그래서일 테다.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시대가 어떻든 바뀌지 않을 언론의 존재 이유다. 바꿔 말하면 이는 곧 치유다. 쿠퍼가 슬픔의 연결자를 자처한 까닭도 그것 아닐까. “슬픔으로 고립될 수 있지만, 슬픔으로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더 이상 이 슬픔을 묻어두고 싶지 않아요. 더 이상 인생의 절반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쿠퍼가 ‘슬픔 시리즈’에서 밝힌 말이다. 세상의 상처를 들추는 건 언론이 할 역할의 반쪽일 뿐이다. 쿠퍼의 고백이 마치, 이제 나머지 절반의 몫을 채워야 할 때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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