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본계 미국 여성 정치인의 삶

입력
2024.01.0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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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패치 밍크- 1

아시아계 여성 최초 미 연방 하원의원으로서 미국의 대표적 반성차별법 중 하나인 1972년 개정 교육법 '타이틀 나인'을 입법한 패치 밍크. wams.nyhistory.org

아시아계 여성 최초 미 연방 하원의원으로서 미국의 대표적 반성차별법 중 하나인 1972년 개정 교육법 '타이틀 나인'을 입법한 패치 밍크. wams.nyhistory.org

‘타이틀 나인(Title IX)’이라 불리는 1972년 미국 개정 교육법은 “누구도 성별을 이유로 연방 지원을 받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활동에서 차별받으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64년 민권법으로 고용 및 공공 부문의 모든 차별이 금지됐지만 교육 부문은 누락됐고, 하위법인 타이틀 식스(Title VI)도 인종과 피부색 출신국가만 차별 금지 범주에 명시하지 않았다. ‘타이틀 나인’이 제정됨으로써 미국 공립학교에서는 체육 여가활동을 포함한 모든 교육 프로그램의 성차별이 금지됐고, 수많은 여학교 운동부가, 스포츠 스타들이 그 덕에 탄생했다.

저 법 개정을 이끈 주역 중 한 명이 일본계 미연방 하원의원 패치 다케모토 밍크(Patsy Takemoto Mink, 1927~2002)다. 아시아계 여성 최초 미 연방의원으로서 1965년 1월 4일 의회 연단에 선 그는 이후 24년간 민주당 내 강성 인권 정치인으로 활약했다. 그의 삶은 2008년 다큐멘터리(Patsy Mink: Ahead of the Majority)로 제작될 만큼 치열하고 또 극적이었다.

그는 이민 3세였다. 19세기 이민 온 조부모는 하와이 마우이섬 사탕수수 농장과 토목현장 노동자였고, 아버지는 일본계 미국인 최초로 하와이대를 졸업한 토목기술자였다. 패치 등 11남매는 청소년기를 와이카모이 개울가 판잣집에서 살았다. 일제가 진주만을 공습하던 해 그는 마우이고교 2학년이었다. 일본계 시민들이 미국의 잠재적 적으로 배척-차별받으며 백악관 행정명령으로 일본계 시민 대다수가 강제수용시설에 끌려갔지만, 전시에 요긴했던 토목기술자 아버지 덕에 그의 가족은 수용소행을 면했다. 차별과 멸시에도 불구하고 그는 탁월한 학업 성적과 사교성으로 이듬해 여학생 최초로 고교 학생회장이 됐고 졸업생 대표로 선발됐다.
하지만 그건 그의 인종-성차별과 투쟁-극복 서사의 시작일 뿐이었다.(계속)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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