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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즈음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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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었다. 산 너머에 사는 사람들과 만나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인사를 나누고, 어른들끼리는 서로 마실도 다니면서 살갑게 지냈다. 반면 냇물을 사이에 둔 이웃 동네 사람들 간에는 왕래가 거의 없었다. 작은 냇물 이쪽과 저쪽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아주머니들도, 여름철 시내에서 멱을 감는 아이들도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 가끔 술 취한 남자들이 냇물 건너 사람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그 감정의 근원이 어디인지 알지 못했지만, 경쟁하는 두 집단 사이에서 이쪽에 속한다는 건 그리 싫지 않은 기분이었다.
어느 가을 저녁, 냇물 건너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대~앵. 대~앵…' 그때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감정적 파동을 부르는 소리였다. 그 마을에 작은 교회가 들어섰다고 했다. 교회 종은 아침저녁으로 울렸고, 그 소리와 함께 여태껏 왕래가 없던 냇물 건너 사람들이 우리 동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형제자매님, 주님 말씀 전하러 왔어요." 말쑥한 옷차림으로 '전도'에 나선 그들이 집마다 돌며 찬양 노래를 부르고, 빨강 노랑 습자지에 싼 사탕 꾸러미를 건넸다.
동네 친구들이 속속 그들의 복음에 이끌리고, 그 친구들의 손에 잡혀 마지못해 교회 문을 처음 들어선 날이었다. 예배 시간이 끝난 뒤 열 명 남짓한 학생들이 예배당 안쪽 작은 방으로 들어가 차기 중고등부 임원을 선출한다며 쪽지에 이름을 적더니, 잠시 후 내가 부회장으로 선출됐다고 박수를 쳐댔다. 뭔지 모를 꿍꿍이에 당했다는 낭패감이 화르르 몰려왔다. 그 와중에도 회장 자리는 제일 멀끔하게 생긴 그 동네 남자 고등학생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에 더 부아가 치밀었지만, 고작 중학교 2학년 아이였던 나는 항변 한마디 못 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대신 다시는 그 교회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것으로 이 모욕감을 앙갚음하리라 작심했다.
시간이 흐르고 연말이 코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이 우르르 우리 집으로 들이닥쳤다. 웃는 얼굴로 그들이 말했다. '네가 방기한 부회장 역할을 여럿이 나눠 감당하느라 힘들었지만 괜찮다, 돌아온 탕아를 품어주라는 성경 말씀에 따라 우리가 이렇게 찾아왔다, 그러니 어서 회개하고 성탄절 축제를 함께 준비하자.'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길 잃은 어린 양 같은 기분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웃는 눈으로 쏟아내는 착한 말들을 듣던 내 감정은 점점 배배 꼬이고, 마침내 두 눈을 부라리며 쏘아붙이고 말았다. "무슨 축제요? 예수님이 그 고통을 짊어지고 외롭게 돌아가신 걸 우리가 다 아는데, 뭐가 신난다고 성탄절만 되면 들떠서 요란을 떨고 난리예요? 예수님을 진짜로 사랑한다면 이런 날일수록 차분하게 그분의 생애를 기리고 반성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들은 별 이상한 종자 다 본다는 불쾌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돌아섰고, 나는 내 입에서 그렇게 멋진 말이 튀어나왔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멀어지는 무리를 미소로 배웅했었다.
한데 말이란 게 참 묘해서, 무심코 쏟아낸 그 말들이 두고두고 발목을 잡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냉담한 무신론자로 살면서도, 성탄절 즈음이면 무슨 의식인 양 예수의 죽음을 생각하며 침잠하게 된다. 올해도 습관처럼 예수의 생애를 다룬 두툼한 책을 꺼내 읽다가 불쑥 옛일을 떠올렸다. 그때 내게 복음을 전파하던 이웃 마을 학생들은 지금 어디에서 성탄절을 맞이할까. '대~앵. 대~앵…' 냇물 건너 교회에서 울리던 오래된 종소리가 다시 또 귓전에 맴도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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