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장갑'이라고 말하지 말아요

입력
2023.12.21 04:30
27면

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누군가를 서럽게 하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그런 까닭에 벙어리장갑은 사라져야 할 말이다. 손모아장갑, 엄지장갑이 표준어에 오를 날을 기대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누군가를 서럽게 하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그런 까닭에 벙어리장갑은 사라져야 할 말이다. 손모아장갑, 엄지장갑이 표준어에 오를 날을 기대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털장갑과 털양말.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다. 아내가 떠준 장갑과 양말에 배 덮개까지 하고 하늘로 간 김 전 대통령은 늘 따듯하겠단 생각을 했다. 아내는 남편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기 한참 전에도 그를 위해 장갑과 양말을 짰다. 그 덕에 남편은 서슬 퍼렇던 1970년에도 시리지 않은 마음으로 옥살이를 했을 게다.

엄마 덕에 우리 가족들도 매년 겨울을 따뜻하게 나고 있다. 아들딸은 물론 손주들에게도 장갑, 모자, 목도리, 조끼, 카디건을 짜서 입히고 씌워주신다. 철없던 어린 시절엔 모직 코트 입은 친구들이 마냥 부러웠다. 그래도 투정 부리지 않은 건 엄마 따라 시내 양품점에 가는 즐거움이 컸기 때문이다. 엄마가 색색의 고운 털실과 바늘을 고르는 동안 원피스, 구두, 머리핀 등을 구경하는 게 참 좋았다.

“뜨개질은 어렵지 않아. 짜다가 잘못되었다 싶으면 언제든지 풀어서 다시 시작하면 돼.” 엄마는 도시에서 바삐 사는 딸들에게 뜨개질을 권유한다. 사회생활에서 느끼는 삭막함을 녹이는 데 뜨개질만 한 게 없다고 말한다. 한 땀 한 땀 뜨다 보면 엉킨 감정이 풀릴 것 같긴 하다. 뜨개질하는 엄마 모습만 봐도 마음이 편안하니까.

그런데 뜨개질의 대명사 ‘벙어리장갑’은 들을 때마다 불편하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무심코 내뱉는 이들이 있다. 벙어리는 ‘벙어리가 되다’는 뜻의 옛말 ‘버우다’에 사람을 일컫는 ‘어리’가 붙은 말이다. ‘버우어리’가 벙어리로 변했다는 설이다.

국어학자 홍윤표 교수는 ‘살아있는 우리말 역사’에서 벙어리는 ‘막다, 막히다’라는 뜻의 ‘벙을다’에서 왔다고 설명한다. 어간 ‘벙을-’에 명사형 접미사 ‘-이’가 붙은 ‘벙을이’가 변형됐다는 것이다. 예전엔 언어장애인은 혀와 성대가 붙어 있어 말을 못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엄지손가락만 따로 있고 나머지 손가락이 붙어 있는 장갑을 ‘벙어리장갑’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설득력 있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장애인을 업신여겨 ‘벙어리장갑’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을 게다. 하지만 누군가를 서럽게 하는 말이라면 쓰지 말아야 한다. 북한에선 ‘짜개장갑’ ‘통장갑’이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선 ‘손모아장갑’ ‘엄지장갑’이 자리를 잡았다. 둘 중 사용 빈도 등을 살펴 국어원이 표준어로 등재할 일만 남았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사랑의 온도계’를 품은 커다란 손모아장갑이 세워졌다. 따뜻한 나눔의 이야기로 장갑 속 사랑의 온도가 100도를 훌쩍 넘길 기대한다. 사람은 누구나 따뜻한 마음을 품고 사니까.



노경아 교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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