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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무역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

입력
2023.12.1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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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네덜란드의 즈바르트 피트(Zwarte Pete)


플리커닷컴(flickr.com) 캡처

플리커닷컴(flickr.com) 캡처

네덜란드 연말 풍습으로 ‘즈바르트 피트(Zwarte Pete)’란 게 있다. 즈바르트 피트(black pete), 즉 흑인 피트는 산타클로스의 유래가 된 성 니콜라우스의 조수. 네덜란드인들은 성인 축일(12월 6일) 전야가 되면 붉은 립스틱에 얼굴을 검게 칠하고 르네상스 전통의상을 입고 거리를 누비며 아이들에게 사탕 등을 나눠준다. 흑인 피트는 19세기 한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흑인 캐릭터로, 무어인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2000년대 이래 저 풍습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미국 백인들의 코미디극 ‘민스트럴 쇼’와 다를 바 없는 인종 차별적이라는 것. 네덜란드는 1612~1872년의 약 250년간 아프리카 수리남 등 여러 곳에서 최소 60만 명의 원주민을 노예로 실어 날랐다. 네덜란드는 1863년 노예제(무역)를 폐지했지만 10년 과도기 규정 때문에 실질적으로 끝낸 건 1873년이었다.
즈바르트 피트 풍습에 대한 비판은 ‘BLM(Black Lives Matter: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 운동 열풍과 함께 진보 정치인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노예무역의 과거사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와 배상 요구로 확산됐다. 2022년 12월 19일, 자유민주당 마크 루터(Mark Rutte) 당시 총리는 서구 국가 최초로 노예무역의 “추하고 뼈아프고 수치스러운” 과오를 공식 사과하고 노예제 유산 해소와 과거사 교육을 위한 2억 유로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루터 총리의 사과는 노예제 폐지 150주년에 맞춰 이뤄진 전향적 조치였지만, 진보 진영과 수리남 시민단체 등은 피해국과 노예 후손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 계획이 빠졌다고 비판했고, 우익 정치권과 단체들은 공식 사과 자체에 대해 거칠게 반발했다.
지난달 하원 총선에서 극우 정치인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이끈 자유당이 37석을 차지하며 1당이 됐고, 자유민주당은 24석(총 150석)으로 3당으로 밀려났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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