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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는 노래를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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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을 요즘 즐겨보고 있다. 2020년부터 방영된 음악 경연으로, 이번이 세 번째 시즌이다. 참가자들은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가수들이며, 각자의 이야기와 음악으로 무대에 오른다. 하지만 이들의 정체는 오디션 과정에서 탈락하거나 최종 합격 시까지 공개되지 않아, 참가자들은 단순히 숫자로 '○○호 가수'로 불린다. 아무리 무명 가수라지만 방송에 얼굴이 나오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는 그의 이름과 대표곡들이 퍼진다. 방송은 애써 모른 척 눈감고 가르쳐주지 않지만, 누구인지 궁금한 사람은 찾아보면 다 알 수 있는 구조다. 그래서 과거 행적으로 논란을 빚는 가수도 있다.
높은 곳에 앉아 있는 평가자들 앞에서 시험받는 시간은 늘 고통스럽다. 사소한 실수 하나로도 내 삶 전체를 부정당하는 모욕을 느끼기도 한다. 여유롭고 말 잘하고 까다로운 평가자도 입장을 바꿔 경연에 참가하면 어느 누가 통과하리라 장담할 수 있겠는가? 김광석이 살아 돌아와도 부족한 부분을 지적받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장르를 잘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장르에도 도전해보라는 해괴한 요구가 빗발치기도 한다. 말이야 쉽다. 선미에게 포크를 해보라고 하거나, 이해리에게 트로트를 해보라고 하면 그들이라고 잘하겠는가? 이런 자리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내 음악과 내 삶을 부정당하지 않을 당당함. 그래서 나는 '당신들이 뭔데 날 평가해?'라는 태도를 은근히 내비치는 자기만의 것을 가진 뮤지션이 보기 좋다. 과한 평가에 들뜨지 않고, 작은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 평정심을 가진 사람.
예술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행위다. 작고 가냘픈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하고, 삶에 결핍이 있을수록 더 깊고 풍성한 예술이 나온다. '58호' 가수의 감동적인 노래를 들은 윤종신의 말처럼, 외로우니까 저런 좋은 음악이 나온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대표 좀비 영화인 '부산행'을 보자. 영화 후반에는 악전고투 끝에 좀비 떼를 따돌리고 부산에 도착한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들이 지친 몸으로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데, 맞은편에는 총을 겨누고 있는 군병력이 있다. 좀비로부터 부산을 지키려는 사람들이다. 어두운 터널 안의 움직이는 존재들이 좀비인지 사람인지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해, 이내 상부로부터 사살 명령이 내려진다. 이 긴박한 때 어린 주인공은 헤어진 아빠를 생각하며 슬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렇다. 좀비는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산 사람만이 노래를 한다. 예술이 인간됨의 근본적인 속성임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최근 신보를 낸 가수 강아솔과 정밀아의 음반은 이런 예술적 가치를 다시 상기시킨다. CD라는 물리적 형태로 음악을 경험하는 것은 그 자체로 예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반영한다. 이들 같은 진정한 아티스트들이 외롭지 않도록 지지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다. 그들의 노래를 통해 우리는 위로받고, 인간적인 연결을 느낄 수 있다. 예술의 귀중함을 인정하고 이에 걸맞은 존중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책임이다. 소음이 아닌 노래를 만들고, 음원이 아닌 음반을 만드는, 연예인 아닌 아티스트들이 이 겨울도 잘 이겨내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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