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만장일치’가 말해주는 것

입력
2023.12.13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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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보고서 패싱 인사 벌써 20명째
"국민 옳다" 해놓고 인사 독주 지속
‘좋은 인물’이면 야당도 딴지 못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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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대법원장 취임식에 조희대 대법원장이 꽃다발을 받은 후 대법관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최주연 기자

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대법원장 취임식에 조희대 대법원장이 꽃다발을 받은 후 대법관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최주연 기자


18번째다… 19번째다… 20번째다…

그렇게 20명을 채웠다. 윤석열 정부 1년 7개월 동안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장관급 고위 공직자 수다. 거의 2명 중 1명꼴이다. 위법은 아니다. 장관 임명은 국회 동의 없이도 된다.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으면 대통령은 국회에 재송부를 요청할 수 있고, 그래도 채택이 안 되면 임명을 강행해도 된다. 그럼에도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인사청문 절차를 거치도록 한 건, 인사권을 남용하지 말라는 취지일 것이다.

반복되면 무뎌진다. 한 명 한 명 늘어날 때마다 언론은 이번이 몇 번째라고 중계방송을 했다. 처음에는 격분했던 이들도 이제는 “그렇지 뭐” 정도의 반응이다. 지금의 인사 독주는 그런 체념에 기대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대야당 탓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해도 너무한 경우가 상당수다. 기억을 상기해보자. 35일 만에 낙마한 박순애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음주운전, 그것도 혈중 알코올농도 0.251%의 만취운전 전력이 있다. 현재 처벌기준(0.03%)의 10배에 육박한다. 논문 표절에, 갑질 논란도 있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인사청문회조차 없이 임명을 강행하며 국민이 아니라 그를 다독였다. “언론의, 야당의 공격받느라 고생 많이 했다”고.

야당의 탄핵 추진을 앞두고 자진 사퇴한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자녀 학교폭력 의혹에 납득할 만한 소명도 없었고,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문재인 OOO 따는 것은 시간 문제’ 등의 숱한 막말도 문제 되지 않았다. 20번째 ‘보고서 패싱’ 사례가 된 김명수 합동참모본부 의장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당일 주식을 거래하고 골프를 쳤다. 자녀 학폭 의혹도 있었다.

이런 와중에 이균용 후보자 낙마 후 지명된 조희대 대법원장은 가뭄에 단비 같았다. 국회 여야 청문위원 13명이 청문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국회 인사청문특위는 보고서에 “고위공직 후보자에게 흔히 보이는 개인 신상과 관련한 도덕성 등의 문제 제기가 거의 없었다”며 “재판 지연 문제, 영장 남발 문제 해결을 비롯한 사법개혁에 대한 비전과 구체적 방안을 갖고 있다”고 적시했다. 도덕성과 자질 모두 이례적 극찬이다. 75일간의 사법부 수장 공백 사태가 야당에도 부담이 된 측면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흠잡을 수 없는 인물을 지명한다면 이념 성향을 떠나 거대야당이라도 딴지를 걸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줬다.

한 줄기 단비로 갈증이 해소될 리 만무하다. 다음 주 줄줄이 예고된 신임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는 다시 암울하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음주운전에 폭행 전과까지 있다. 알고도 강행하겠다는 것이니, 검증 실패가 아니라 검증 방기다. 김홍일 방통위원장 후보자는 방통위 15년 역사상 첫 검사 출신이다. 윤 대통령의 직속상관이었다. 당연히 미디어 관련 경력은 전무하다. 설령 야당이 청문보고서를 채택해준다고 해도, 국민들이 수긍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장관과 달리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은 국회 본회의 표결을 거쳐야 한다. 장관처럼 청문보고서 채택 없는 인사 강행이 불가능한 자리다. 인사 변화가 아니라 전략적인 예외였다고 보는 게 맞겠다 싶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후 윤 대통령은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했다. 민심을 거스르고 보궐의 원인제공자(김태우)를 광복절 특사로 사면한 뒤 재공천한 것에 대한 반성이라고 봤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민심을 아랑곳 않는 인사 독주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앞으로도 21번째, 22번째를 무의미하게 중계방송해야 하는 언론이 괜히 국민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이영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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