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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들 편애한 노모, 치매 걸리고서야 죽은 큰아들을 부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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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43년 차 이승우(64) 작가는 신학자의 길을 고민하다 소설가를 택했다. 그의 글은 관념적이다. 차분하고 묵직하다. 그의 열두 번째 소설집 '목소리들'은 유독 다정하다. 책 마지막 페이지에서 그 이유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해받으려는 간절함"이 아니라 "간절함을 이해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말에서다. 수록작 8편은 이해받지 못하고 외면당했던 이들의 목소리들을 끌어내려는 진중한 시도 끝에 나온 단편들이다.
소설집은 최근 5년간 쓴 작품을 묶었다. 공통적으로 서사의 출발점에 '집'에서조차 이해받지 못한 인물들이 있다. '집'은 물리적 공간이기보다는 함께 기거하는 사람들이다. 심리적으로 지근거리에 있는, 가장 편안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물건이 채워져 있어도 사람이 없으면, 그게 빈집이지 뭐예요." 이 대목처럼 작가는 빈집에서 살지도 온전히 떠나지도 못하는 인물을 그렸다. 누군가 떠나간 빈자리를 보며 그제야 자신의 오해 혹은 몰이해, 그리고 기피에 죄책감을 느끼는 인물도 그렸다.
표제작 '목소리들'은 각각 엄마와 딸을 화자로 삼은 2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엄마는 아들 '준호'의 죽음을 탓할 사람을 찾는다. 사기를 당해 무일푼 신세인데 본인이 사기꾼으로 오해까지 받아 거처도 없었던 준호. 아들이 탄 차가 시동도 걸리지 않았는데 구르는 바람에 사고가 난 것은 고물차를 준 남편의 탓 같고, 마지막 순간 준호의 말 상대가 돼주지 않은 딸의 탓만 같다. 엄마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순간순간 정신을 차리는가 싶지만 죽음의 원인을 찾는 일을 멈출 것 같진 않다.
딸은 동생 준호의 죽음에 엄마의 책임도 있음을 넌지시 알린다. "오지 마라, 이런 꼴로는"이라고 준호가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는데, 그 말을 하면서 생전의 준호를 밀어낸 건 엄마였다. "눈빛, 뒷모습, 옅게 내쉬는 한숨. 그런 거. 그런 게 다 말이잖아. 엄마는 모를지 모르지만, 엄마는 입으로 말하는 대신 몸으로 더 자주 말했어." 딸 역시 동생을 끝내 외면했다는 죄책감을 놓지 못한다. "오지 마라, 이런 꼴로는"이란 말은 딸이 참았던 말일지도 모르겠다. 모녀는 준호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되새김질한다.
2021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마음의 부력'도 떠난 아들의 목소리를 품고 사는 어머니의 이야기다. '성식'은 어머니가 자신과 죽은 형 '성준'의 목소리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어머니가 어느 날 자신에게 "성준이냐"라고 물었을 때 충격을 받는다. 죽은 형을 찾는 노모의 치매기에 놀란 게 아니다. 어머니가 성식의 목소리를 성준의 목소리로 착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언제나 성준에게만 "성식이냐"고 물었다. 성식을 편애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왜 새삼 형을 찾을까. 성준의 카페 창업 비용을 대주고 싶으니 돈을 좀 달라고 성식에게 청하는 말이 열쇠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손을 벌리지 않던 형은 딱 한 번 어머니에게 도움을 원했다. 어머니는 성식의 대학원 학비부터 챙겨야 한다며 거절했다. 그게 어머니의 마음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상실감과 슬픔은 시간과 함께 붉어지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시간과 함께 더 진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성식은 "성준이냐"고 묻는 어머니에게 맞다고 답한다. 그렇게 형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조금 더 다정해진다.
소설 속 인물들이 내면의 목소리를 계속 듣는 건 잊지 않겠다는 의미다. “간절함이 없으면 반복할 수 없습니다. (...) 어떤 반복은 기원이고 부름입니다. 지우는 것이 아니고 새기는 것입니다."(‘소화전의 밸브를 돌리자 물이 쏟아졌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당신은 어떤 목소리를 불러내 새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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