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28 초안서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 빠져… "OPEC 요구 또박또박"

입력
2023.12.12 09:15
수정
2023.12.1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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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막 전날 합의문 초안 공개... '완화 문구'만
EU·기후정책가·환경단체 등서 비판 쏟아져
산유국 UAE가 의장국... "산업계 로비 결과"

인도의 환경운동가 리시프리야 칸구잠(오른쪽)이 11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회의장에 들어가 '화석연료 사용 중단' 시위를 벌이다 경비원들에 의해 쫓겨나고 있다. 두바이=AP 연합뉴스

인도의 환경운동가 리시프리야 칸구잠(오른쪽)이 11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회의장에 들어가 '화석연료 사용 중단' 시위를 벌이다 경비원들에 의해 쫓겨나고 있다. 두바이=AP 연합뉴스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폐막 전날 공개된 합의문 초안에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 문구가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도 유의미한 진전을 이루지 못한 셈이어서, 각계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 등에 따르면, 국제 환경단체뿐 아니라 기후 정책가들, 기후변화 최전선에 있는 도서국들은 합의문 초안을 두고 '실망스러운 합의'라고 일제히 성토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에 "이 비굴한 초안은 마치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요구를 또박또박 받아쓴 것처럼 보인다"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이번 총회는 완전히 실패하기 일보 직전"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결과가) 나쁘다"고 평가했다.

당초 공유된 합의문 초안에는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 문구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COP28 폐회(12일)를 하루 앞둔 이날, 의장국인 아랍에미리트(UAE)가 작성해 공유한 초안에서는 해당 문구가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그 대신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 석유·석탄·가스의 생산·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보다 완화된 표현이 담겼다.

COP28 합의문 협의에 참여한 유럽연합(EU) 측도 초안에 대해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EU 협상위원이자 아일랜드 환경부 장관인 에이먼 라이언은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EU가 협상에서 이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년 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 의장직을 수행한 알록 샤마는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을 명확히 지지하는 국가가 이렇게 많은데, 합의문이 실제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기후변화 문제를 다루는 국제 환경단체들의 반발도 거세다. 기후행동네트워크(CAN)의 글로벌 정치전략 책임자인 하르지트 신은 "(당사국들이)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이라는 명확한 표현 대신 '소비와 생산을 줄인다'는 막연한 약속을 택했다"며 "이것은 화석연료 산업의 로비력을 명확히 보여 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급격한 해수면 상승에 따라 기후변화 최전선에 몰린 저지대 국가들도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카리브해와 태평양, 인도양 등에 위치한 도서국들의 모임인 군소도서국가연합(AOSIS) 측은 "우리는 사망 증명서에 사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에 대한 강력한 약속이 제외된 합의문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요 석유수출국으로서 의장국을 맡은 UAE는 총회 유치 때부터 기후대응 노력에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번 총회를 중동 산유국들의 환경훼손 이미지를 세탁할 '그린워싱'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의심도 나왔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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