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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이 서로를 혐오하는 자기모순...애증의 관계,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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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 드립니다.
'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엄마를 미워하면 나쁜 딸일까'. 몇 해 전 인기를 끈 모녀 관계에 관한 책 제목들이다. 엄마와 딸을 애증의 관계로 상정한 책들이 수많은 엄마와 딸 사이에서 공감을 얻은 이유는 뭘까.
권여선의 '안반'(창비 2023년 겨울호)은 그 이유를 깊이 고심한 소설이다. 애틋하면서도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마는 모녀 관계를 세밀하게 써냈다. '혜영' '혜진' 자매와 엄마 '신숙' 그리고 신숙의 엄마 '유재'까지 3대에 걸쳐 흐르는 감정선을 따라 읽다 보면 자신과 닮은 부분을 만날 것이다. 밀어냈지만 어느새 내 것이 된 엄마의 말과 할머니의 행동을 발견하는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이야기는 신숙이 내시경 수술을 위해 입원하면서 시작한다. 사흘 정도 입원하면 된다지만 여든이 넘은 엄마가 걱정된 맏딸 혜영은 간병을 자청한다. 간호·간병 통합 병동이라 개인 간병인을 쓸 수 없는 병동인데도 "엄마에게 치매기가 있다"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의사의 허락을 받아냈다. 그런 언니를 보며 혜진은 이런 말들을 꾹 삼킨다. "참 가지가지, 사서 고생한다. (...) 못 말리는 효도 충동."
문제는 간병 기간이 길어지면서 터진다. 입원 기간이 일주일로 늘어나고 퇴원 후엔 매일 통원 치료까지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다. 혜영은 동생 혜진을 붙잡고 엄마의 '아기 짓'에 불만을 토로한다. 엄마가 손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고, 그러다 별것 아닌 일에 이상한 고집만 부린다고 하소연한다. 혜진은 괜한 고생을 하고 미움을 쌓는 언니를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작가는 유재와 신숙, 신숙과 혜영의 관계를 겹쳐 보이면서 서사를 한층 깊게 끌고 간다. 언니를 여기저기 긁어대면서도 효도를 은근히 요구하는 엄마. 혜진은 엄마에게서 할머니의 모습을 발견한다. 할머니는 "딸년들 너무 오냐오냐 키워봤자 소용없다" "다 도둑년들"이라고 훈수를 뒀지만 정작 당신은 평생 딸 옆을 떠나지 않았다. 혜진은 문득 할머니의 날카로운 말들을 혼자 다 받아낸 외동딸 신숙의 처지가 딱해진다. 엄마는 외동딸이어서 힘들고, 언니는 맏딸이어서 힘들고, 할머니는 또 몇째 딸이었기에... 그 사실을 곱씹던 혜진은 무수한 딸들 사이에서 '환상적 유사성'을 읽는다. 딸이 딸을 낳는다. 자기혐오적 모순을 안은 채로. 그리고 그 모순은 모계를 타고 대물림된다. 그러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라고 소설은 자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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