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에 대한 IMF의 섬뜩한 경고

입력
2023.12.07 00:00
수정
2023.12.07 07:48
27면


미국 워싱턴 IMF 본부에 설치된 IMF 로고.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워싱턴 IMF 본부에 설치된 IMF 로고.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한국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 자문 보고서(IMF Country Report No. 23/369. REPUBLIC OF KOREA - 2023 ARTICLE IV CONSULTATION)가 지난달 16일 공개됐다. 잠시 언론의 주목을 받다가 벌써 잊힌 것 같다. 언론이 주목한 내용은 약 50년 뒤인 2075년에 가면 한국의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주된 이유가 인구 고령화에 따른 연금지출 때문이다. 너무도 충격적인 내용임에도 보고서의 부록에 수록된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IMF 보고서의 부록에 수록된 연금 관련 상세한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다(Annex X. Pension Reform Options to Cope With Rapid Aging). 한국의 빠른 인구 고령화와 연금제도 단 두 가지 요인만으로도 국가부채가 50년 뒤에 GDP 대비 2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IMF는 국민연금 수급연령을 6세 연장해 71세부터 받도록 개편할지라도, 또한 국민연금액을 지금의 절반으로 줄일지라도 GDP 대비 국가 부채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수급연령 연장 또는 연금액을 절반으로 줄이는 옵션 중에서 하나씩만 채택할 때 그렇다는 뜻이다.

IMF가 분석한 재정안정조치 대안별 향후 50년 후(2075년) 국가부채 비율 전망을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준선(Baseline) 전망에서는 2075년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00% 수준으로 나타난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재의 9%에서 13.8%포인트 추가 인상한 22.8%로 인상할 경우에만 국가부채 비율이 증가하지 않는다. 퇴직연령 연장과 소득대체율 인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경우는 물론이고, 보험료 인상과 퇴직연령 연장, 그리고 소득대체율 인하라는 세 가지의 정책 수단을 동시에 활용할 때에도, 충분한 수준의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여전히 국가부채가 증가하게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단지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증가하는 속도를 둔화시킬 뿐이다.

특히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연금 수급연령을 67세로 2년 연장하고, 보험료를 18.2%(9.2%포인트 더 인상)까지 대폭 인상할지라도 국가부채는 계속해 늘어난다. 보험료 인상 폭에 따라 국가부채 증가 속도의 완화 효과는 있으나, 여전히 국가부채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부연하면, IMF는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3.8%포인트 더 올려야, 즉 22.8%가 돼야 국가부채가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필자가 대표 집필한 2022년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인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를 위한 공적연금 제도개혁 방안 모색'의 14쪽에 기술된 “재정안정 달성을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최소한 21.33%까지 인상하여야 함”과 유사한 추정치다. 이는 IMF가 2021년 분석했던 유럽 국가들과는 너무도 상황이 다르다. 대다수 유럽 국가들은 2060년까지 GDP 대비 연금부채가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스웨덴, 핀란드와 같은 나라들은 오히려 줄어든다. 뼈를 깎는 연금개혁을 했기 때문이다. 올해 90세인 김일천 전 보건복지부 국장이 “연금은 99%가 수리적인 문제일 뿐이다”라고 늘 강조하는 배경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개편’ 논의가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보험료를 조금 올리면 나타나게 되는 착시 현상, 즉 기금소진 시점이 몇 년 연장되는 것을 재정안정 방안이라고 호도하면서, ‘더 내고 더 받을 수 있다’는 주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지난 10월 말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에는 구체적인 재정안정 방안 없이 국민 다수가 ‘더 내고 더 받는 것을 선호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정부가 재정안정 방안을 제시하지 않다 보니, 오히려 국회가 개혁안을 내놓으라고 정부를 압박하는 일도 있었다. 문제는 총선이 다가오면서 연금 논의 자체가 실종돼 가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1997년 IMF 경제위기 당시 세계은행(WB, World Bank)으로부터 구조조정 차관(SAL, Structural Adjustment Loan)을 얻기 위해 당시 한국 정부가 경험했던 굴욕적인 모습들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세계은행은 IMF가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구조조정과 사회안전망의 개혁을 요구했다. 특히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 개혁을 구조조정협약에 명기하도록 요구했다. 이러한 개혁 내용을 담을 백서(White paper)를 발간해야 한다는 조건을 수용하면서,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었다.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필자가 세계은행으로부터 요청받았던 프로젝트가 '세대 간 회계'(Generational Accounting for Korea – With Special Reference to Public Pension Schemes)에 대한 것이었다. 2000년 10월 12일과 13일 양일간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최되었던 세계은행 주관 국제회의에서 세계은행 측은 필자가 수행한 보고서를 현장에서 배포했다.

당시 필자가 수행했던 세계은행 프로젝트는 연금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연금제도로 인한 세대 간 불평등이 상당한 수준에 달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처럼 뼈아픈 경험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또다시 그 길을 가려고 하는 것 같다. 개혁을 하지 않을 경우 닥쳐 올 위기는 1997년 위기와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처한 실제 상황이 어떠한지를 가감 없이 국민에게 알려야만 하는 이유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해법을 모색할 수가 있다. 정치적 수용성만 따질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현실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는 일에 정부와 정치권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 나라를 회복 불능의 상태로 몰아갔다는 역사적 심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한국연금학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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