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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는 소중한 문화"...베트남 '개고기 추방 캠페인', 절반의 성공

입력
2023.12.08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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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동남아 개고기 식용 문화

편집자주

2023년 2월 한국일보의 세 번째 베트남 특파원으로 부임한 허경주 특파원이 ‘아세안 속으로’를 통해 혼자 알고 넘어가기 아까운 동남아시아 각국 사회·생활상을 소개합니다. 거리는 가깝지만 의외로 잘 몰랐던 아세안 10개국 이야기, 격주 금요일마다 함께하세요!

지난달 30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 상인이 개고기를 해체하고 있다. 매대 옆으로 까맣게 그을린 개가 원래 형태 그대로 놓여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지난달 30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 상인이 개고기를 해체하고 있다. 매대 옆으로 까맣게 그을린 개가 원래 형태 그대로 놓여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지난달 30일 저녁 베트남 하노이 외곽의 꾸옥오아이현. ‘개고기 골목’에 들어서자 고기 굽는 냄새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가게마다 그을린 개가 형태 그대로 켜켜이 쌓여 있었고, 상인들은 부지런히 해체·발골 작업을 하고 있었다. 식당에선 퇴근한 직장인 십여 명이 삼삼오오 앉아 개고기 요리를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개고기를 판매했다는 응오(52)에게 “손님이 많은 것 같다”고 말을 걸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예전엔 하루 열 마리 넘게 팔렸지만 지금은 평소엔 하루 두세 마리, 많아야 네 마리 정도 팔리는 게 전부”라며 “그나마 오늘처럼 월말에는 손님이 조금 늘어나는 편”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에는 달이 바뀔 때 개고기를 먹으면 운이 풀린다는 속설이 있다.

한국에선 정부·여당이 식용 개의 살육, 도살, 유통,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특별법 제정을 본격화하면서 개고기 식용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도 개고기를 먹느냐 마느냐로 논쟁이 뜨겁다. 한국처럼 법으로 금지하는 수준까진 아니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개 식용을 줄이려 고하고 있다. "먹지 말자"고 읍소하거나 개고기 시장을 폐쇄하는 등 여러 방안을 동원하고 있으나 깊게 뿌리내린 개고기 식용 문화를 뿌리 뽑긴 어려워 보인다.

베트남 하노이의 한 개고기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메뉴. 한 접시의 가격은 약 20~25만동 사이다. 음식점 제공

베트남 하노이의 한 개고기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메뉴. 한 접시의 가격은 약 20~25만동 사이다. 음식점 제공


하노이 개고기 매장 1100→800개 감소

동남아의 대표적인 개고기 애용 국가는 베트남이다. 베트남의 개고기 소비량은 연간 500만 마리(2020년 기준)로 추정된다. 중국(연간 1,000만 마리)에 이은 세계 2위다. 동남아에서 식용 등을 이유로 도살되는 개가 1년에 900만 마리인 점을 감안하면, 절반 이상이 베트남에서 소비된다는 얘기다.

베트남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개를 식품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다만 법적으로 금지하지도 않은 까닭에 공공연한 먹거리로 여겨진다. 정부가 개 식용에 칼을 뽑은 것은 2018년부터다. 당시 수도 하노이시는 도시 이미지 개선과 광견병 확산 방지를 이유로 시민들에게 “개와 고양이 먹는 것을 자제해달라”고 권고했다. 2021년 개고기 완전 추방 목표도 세웠다.

지난달 30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 상인이 개고기를 해체하고 있다. 매대 옆으로 까맣게 그을린 개가 원래 형태 그대로 놓여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지난달 30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 상인이 개고기를 해체하고 있다. 매대 옆으로 까맣게 그을린 개가 원래 형태 그대로 놓여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이후 남부 경제 수도 호찌민(2019년)과 중부 호이안(2021년)도 비슷한 정책을 내놓았다. 현지 언론들도 “개고기를 먹으면 광견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 등의 계도 기사를 쏟아내며 힘을 실었다.

결과는 어떨까. 올해 9월 VN익스프레스는 “하노이 동물보건국은 시 당국에 2018년 당시 1,100여 개였던 개·고양이 고기 가게가 현재 800개로 줄었다고 보고했다”고 전했다. 근절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성과가 아예 없진 않은 셈이다.

하노이, 호찌민, 호이안 등은 ‘완전한 개고기 추방’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지방정부가 여는 각종 세미나에서는 △도축·검역 과정을 강화하거나 △개고기에 세금을 더 붙여야 한다거나 △판매지를 제한해야 한다는 등의 다양한 제안이 나온다.

김문중 기자

김문중 기자


”베트남 문화 일부, 없애기 어려워”

그러나 민생 현장의 분위기는 다르다. 개고기를 먹는 행위가 수백 년 전부터 이어진 하나의 ‘식문화’인 만큼 하루아침에 없애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베트남에는 개고기를 먹으면 나쁜 일을 떨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고, 개고기가 영양이 많고 귀한 접대 음식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하노이에선 식용 개고기 생고기가 1㎏당 19만~25만 동(약 1만~1만3,000원)으로 돼지고기(1㎏당 10만~13만 동)보다 비싸다.

국제 동물보호단체 포포즈가 2021년 내놓은 ‘베트남의 개와 고양이 고기 소비’ 보고서에 따르면 개고기를 먹는 베트남인들은 그 이유로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59%·복수 응답), "불운을 예방하기 위해"(24%) 등을 꼽았다.

베트남 회사원 판반쿠옹은 “집에 귀한 손님이 왔을 때 키우던 개를 잡아 대접하는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회사에 중요한 사람이 방문하거나 회사 프로젝트가 끝난 뒤 개고기로 회식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는 "개고기는 과거에도 현재도 베트남 서민 문화 일부”라고 설명했다. ‘국가 이미지 개선’이라는 두루뭉술한 호소로는 개고기 금지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의미다.

인도네시아, 캄보디아도 ‘개고기 천국’

2021년 11월 인도네시아 자바섬 자와퉁와주 수코하르조의 한 도살장에서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인도네시아(HSI)가 도축 직전의 강아지를 구조하고 있다. 자루 속에 담긴 강아지들의 주둥이가 노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다. 수코하르조=A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1년 11월 인도네시아 자바섬 자와퉁와주 수코하르조의 한 도살장에서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인도네시아(HSI)가 도축 직전의 강아지를 구조하고 있다. 자루 속에 담긴 강아지들의 주둥이가 노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다. 수코하르조=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인근 국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인도네시아(HSI) 등의 추정에 따르면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매년 각각 300만, 100만 마리 이상의 개가 식용으로 도살된다.

인도네시아에선 인구의 87%를 차지하는 무슬림은 개를 먹지 않지만, 수마트라주 등 북부 지역에 거주하는 비(非)무슬림은 오래전부터 개고기를 별미로 즐겨왔다. 인도네시아 정부 역시 이들의 전통과 문화를 인정해 개고기를 법으로 금지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개를 도축하는 방식이 잔혹하다는 지적에 따라 일부 지자체는 동물권을 지키지 않는 일부 개고기 시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에드윈 로링 북술라웨시주 토모혼시 시장은 지난 7월 전통시장의 개고기 도축과 거래 금지 규정에 서명하며 “시장 개고기 판매가 제한되면 소비도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노이=글·사진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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