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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역 ‘코인 로커’서 발견된 노인 시신… 일본 사회는 범인을 동정했다

입력
2023.12.01 04:30
수정
2023.12.13 16:16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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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도쿄역 물품 보관함 시신 유기 사건
부패한 노인 시신 담은 여행용 가방
범인커녕 사망자 신원도 못 밝혀내
언론 “비싼 장례비 부담 탓” 연민도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2015년 5월 31일 일본 도쿄역 내 물품 보관함에서 시신을 담은 여행용 가방이 발견된 가운데, 한 시민이 현장 보존 근무를 서고 있는 경찰관을 응시하며 지나가고 있다. 일본 ANN뉴스 화면 캡처

2015년 5월 31일 일본 도쿄역 내 물품 보관함에서 시신을 담은 여행용 가방이 발견된 가운데, 한 시민이 현장 보존 근무를 서고 있는 경찰관을 응시하며 지나가고 있다. 일본 ANN뉴스 화면 캡처


‘일본 도쿄역 물품 보관함(코인로커)에서 사람의 머리가 잘린 채 발견됐다.’

2015년 5월 31일, 일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런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현지 경찰과 언론은 이를 헛소문이라고 일축했지만, 일본 사회의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도쿄역 물품 보관함에는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숨이 끊어진 채 한 달가량 방치된 노인의 시신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해당 코인로커는 경찰과 언론뿐 아니라 소식을 듣고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붐볐다.

시신 유기 장소가 지하철역, 그것도 하루에만 3,000편이 넘는 열차가 오가는 데다 이용객 수도 최소 100만 명 이상인 ‘도쿄의 현관’ 도쿄역인 만큼 경찰은 금방 범인을 잡을 수 있으리라고 자신만만해했다. 역사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의 숫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시신이 발견되고 8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범인은 물론, 살해된 노인의 신원이나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시신을 유기할 장소로 굳이 인파가 넘치는 도쿄역의 물품 보관소를 선택한 이유도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미제로 남은 이 사건에서, 딱 하나 확실한 사실은 숨진 노인이 살아서도 죽어서도 지독히 외로웠다는 점뿐이다. 제대로 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차디찬 철제 코인로커에 버려진 희생자를 안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대대적인 경찰 수사가 무색할 정도로, 유의미한 단서 하나 찾기 힘들었다는 얘기다.

이미 삭제된 CCTV… 사인·신원 모두 ‘오리무중’

일본 도쿄 치요다구에 위치한 도쿄역사의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일본 도쿄 치요다구에 위치한 도쿄역사의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도쿄역 물품 보관함 시신 유기 사건’의 시작은 같은 해 4월 2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도쿄역 마루노우치 남쪽 출구 인근의 물품 보관함을 점검하던 관리회사 직원은 노란색 여행용 가방을 발견했다. 하루 전만 해도 보이지 않던 가방이었다. 이용자가 돈을 넣지 않아 잠겨져 있지도 않았던 보관함 안에 방치돼 있었다. 해당 직원은 규정에 따라 이를 유실물센터로 옮겼다.

주인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감안, 코인로커 관리 업체는 문제의 가방을 한 달간 보관해 뒀다. 1개월 후 비로소 열게 된 가방엔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노인의 시신이 들어 있었다. 당시 가방을 열었던 직원은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우선 살인보다는 시신 유기에 무게를 두고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시간문제’로 여겼던 것과 달리, 용의자 특정 단계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사건 당일 도쿄에서 찍힌 CCTV 영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던 탓이다. 당시 선명한 CCTV 영상은 10일, 해상도가 떨어지는 영상은 3주까지만 저장해 뒀기에, 이미 한 달이 지난 날짜의 상황은 확인할 수 없었다.

희생자 신원과 사인 파악에도 실패했다. ‘70~90세, 키 140㎝가량의 마른 체형 여성’. 경찰이 알아낸 건 이게 전부였다. 일본 매체 문춘 온라인은 이 사건 수사를 맡았던 전직 경찰 A씨를 인용해 “(시신이) 부패하고 있었던 상태라 지문 확인이 어려웠다”고 전했다. 부검에서도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지 못했다. 흉기에 찔리는 등 피살 흔적은 없었고, 질식사나 아사의 가능성은 있었다. 노인의 죽음이 타살인지 아닌지조차 결론 내리지 못한 것이다.

생전 모습까지 복원했지만… 제대로 된 제보 없어

2015년 5월 일본 도쿄역 물품 보관함에서 노인 시신을 담아 둔 여행용 가방이 발견된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경찰이 제보 접수를 위해 같은 해 10월 희생자의 생전 모습을 복원해 공개한 전단. 일본 경시청 제공

2015년 5월 일본 도쿄역 물품 보관함에서 노인 시신을 담아 둔 여행용 가방이 발견된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경찰이 제보 접수를 위해 같은 해 10월 희생자의 생전 모습을 복원해 공개한 전단. 일본 경시청 제공

경찰은 그럼에도 수사를 이어 나갔다. 그나마 참고할 만했던 단서는 ①10년 이내 치아 치료를 받은 흔적 ②가방에 시신과 함께 담겨 있던 검은 이어폰 ③또 다른 가방 내 물품인 도쿄 근교 사이타마현의 파친코 가게 수건, 이렇게 세 가지였다.

용의자가 여행용 가방을 코인로커에 넣은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대에 도쿄역을 오간 이들을 상대로 탐문 수사를 벌였다. 도쿄는 물론, 인근 지역 치과병원의 환자 기록까지 샅샅이 뒤졌다. 또 사이타마현 파친코 가게의 손님을 상대로도 수소문했다. 경찰은 숨진 노인이 걸치고 있었던 옷(얇은 흰색 카디건)의 판매처까지 찾으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수개월이 지나도 진척은 없었다. 경찰은 결국 2015년 10월 희생자의 생전 모습을 복원한 그림을 통해 시민 제보를 받기로 했다. 당시 배포된 전단에는 그림과 함께 노인이 △흰머리가 섞인 30㎝ 길이 머리카락을 가졌고 △이마 중앙엔 5㎜가량 튀어나온 흔적이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아울러 시신을 담은 여행용 가방, 노인 치아를 찍은 사진도 공개됐다.


일본 도쿄역 물품 보관함에서 노인 시신이 발견된 지 1년 후인 2016년 일본 경찰이 시민들의 제보를 요청하면서 공개했던 마네킹과 전단. 희생자가 입고 있었던 옷이 마네킹에 입혀져 있고, 전단엔 생전 모습을 복원한 그림 등이 실렸다. 일본 마루노우치 경찰서 제공

일본 도쿄역 물품 보관함에서 노인 시신이 발견된 지 1년 후인 2016년 일본 경찰이 시민들의 제보를 요청하면서 공개했던 마네킹과 전단. 희생자가 입고 있었던 옷이 마네킹에 입혀져 있고, 전단엔 생전 모습을 복원한 그림 등이 실렸다. 일본 마루노우치 경찰서 제공

언론뿐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사안이라, 경찰도 사건 해결에 열의를 보였다. 2016년, 2017년 시신 유기 사건 발생 날짜인 4월 26일 피해자 모습이 담긴 전단 수백 장을 지하철역에 붙였다. 관련 정보를 담고 있는 일회용 티슈를 지하철 이용객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범인은 빨리 잡히길 바랐다?”... 동정론 이유는

지하철역 코인로커에 노인의 시신을 버린 건 범인이 가족이라면 패륜이고, 제3자라 해도 인면수심의 범죄다. 하지만 일본 사회는 오히려 연민 어린 시선을 보냈다. 일본에서는 평균 200만 엔(약 1,740만 원)에 달할 정도로 비싼 장례 비용, 사망 신고를 하지 않으면 연금을 대신 수령할 수 있다는 점 등으로 고령 부모나 배우자의 시신을 방치하는 사건이 드물지 않다. 이 사건 역시 비슷한 이유에서 발생했을 수 있다는 추측이었다.


2015년 5월 31일 노인의 시신이 든 여행용 가방이 발견된 일본 도쿄역 내 물품 보관함의 모습. 일본 ANN뉴스 화면 캡처

2015년 5월 31일 노인의 시신이 든 여행용 가방이 발견된 일본 도쿄역 내 물품 보관함의 모습. 일본 ANN뉴스 화면 캡처

범인이 ‘빨리 잡히기 위해’ 도쿄역을 유기 장소로 골랐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경찰 출신 범죄심리학자 기타시바 겐은 “타인의 눈에 띄지 않는 집이나 으슥한 곳에 묻지 않고, 도쿄역에 둔 데에는 (잡히고 싶다는)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수많은 CCTV가 있고, 오가는 사람도 많은 지하철역에 굳이 시신을 두고 간 건 쉽게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라는 것이다. 당시 경찰의 최대 의문도 이 대목에 있었다.

코인로커는 물론, 여행용 가방도 잠기지 않은 상태였다는 사실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했다. 보관함이 열린 채라면 그만큼 빨리 가방이 발견되고, 범인이 꼬리를 밟힐 가능성도 커지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범인은 이미 숨졌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기타시바는 “(범인은) 시신을 버리고 현실 도피를 위해 어딘가로 향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했다.

그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풀린 의문점은 없으나, 일본의 사체유기죄 공소시효(3년)가 만료될 때까지 노인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 사건이 미제로 남은 까닭을 짐작게 한다. 바로 ‘무관심’이다. 많은 사람이 서로 부대끼면서도, 무심하게 살아가는 대도시의 공공장소가 범행 장소였다는 사실이 범인을 끝내 익명의 존재로 남도록 만들었다. 죽은 노인도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걸 눈치챈 이가 없을 정도로 생전 고립된 생활을 했을 것이다.

사체유기죄 공소시효는 만료됐지만, 일본 경시청은 살인 가능성이 있는 만큼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 언론은 사건 해결 확률이 제로(0)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노인의 외로움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해소되지 못할 공산이 크다는 의미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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