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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지 출마에 담긴 소명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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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십여 년 전 일이다. 부처 출입을 할 때 모 공공기관 이사장은 일흔이 넘었다. 임기를 마칠 즈음 식사 자리에서 "다음에 공직에 나서게 되면"이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 열정을 추켜세우는 추임새를 넣었지만 분위기와 맞지 않는 노익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았던 직장인들이 노소 없이 정리해고를 당하던 때다. 3자 입장에선 누릴 만큼 누리지 않았느냐 생각하지만 본인 스스로 의욕은 여전하고, 공직에서 할 일이 더 있다고 생각했을 터이다.
내년 총선을 목전에 두고 정치권에 대한 변화 요구는 태풍의 눈이다. 그 핵심은 기득권 포기이고, 희생이다. 여야 가릴 것 없다. 그 요구에 얼마나 부응하느냐에 국민의 시선이나 정치의 변화 양상도 달라질 것이다. 물론 저항도 만만치 않으니 성과가 어느 정도 될지 예측불가다. 쇄신 필요성을 더 절박하게 느껴야 할 쪽은 국민의힘이다. 200석을 운운하는 오만함까지 섣불리 표출하는 야권과 달리 국민의힘은 유권자 마음을 움직일 변화 없인 식물정권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17%포인트 격차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는 지난해 지방선거 승리에 취했던 여당에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 책임이 적지 않은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그 결과는 충격이고, 그래서 국민의힘이 띄운 게 인요한 혁신위다. 지도부와 중진, 대통령 최측근의 불출마나 수도권 험지 출마 요구는 위기의식의 반영이다. 인적쇄신은 저항과 반발을 부르게 마련이다. 5선 중진인 주호영 의원은 “대구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면 대구에서 마치는 것”이라며 반발의 첫 깃발을 들었다. 윤핵관 핵심이라는 장제원 의원은 “알량한 정치인생”을 운운하며 세 과시로 거부했다. 그나마 진지하게 고민하던 김기현 대표는 ‘질서 있는 개혁’, '혁신위의 급발진'을 거론하며 주춤하는 조짐이다. 갈등이 표출되자 17일 인 위원장을 만나서는 “혁신위 의견 취지를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고려해 나갈 생각”이라 했지만 불편함이 여전하다. 이번 회동에서 불출마나 험지 출마 얘기는 없었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민주당처럼 혁신위안을 이런저런 이유로 뭉갤 심산인지, 속도조절인지 여부는 조만간 가려질 것이다.
여당의 곤궁한 처지에 비춰 이들의 저항을 옹호할 일은 아니나 당위만으로 혁신 과정이 술술 풀릴 일은 없다. 떠밀려 벼랑 끝에 서는 걸 반길 이는 없을 터이다. 밀실 공천으로 실세를 단칼에 날려버린 과거 한 시절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희생의 자발성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불출마나 험지 출마를 뒷받침할 대의나 시대정신이 부재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험지 출마와 관련해 요즘 인용되는 게 ‘노무현의 선택’이다. 재보궐선거로 당선된 서울 종로구를 내놓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 부산 출마를 선언했을 때 그의 소명은 3김 할거로 고착화된 지역주의에 돌을 던지는 것이었다. 이미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지역주의 바람에 고배를 마신 터였다. 그는 총선 낙선 후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글을 올렸다. 선거포스터처럼 당선이 보장된 종로를 내놓은 바탕이 된 게 지역주의 타파라는 소명의식이다. 대통령이 될 그의 미래는 차치하고라도 이후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부산 입성은 노무현의 선택이 밑거름이 됐던 건 자명하다.
기득권에 대한 생각이 다르고, 희생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험지에서 살아 돌아오라는 얘기는 당사자 입장에선 거칠기도 할 것이다. 같은 뜻일지 몰라도 '큰 정치' 자락을 까는 게 필요했을 터인데 인요한 혁신위의 접근법엔 아쉬움이 있다. 그 성과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민주당, 정치 변화에 목마른 국민의 심정을 보면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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