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우리와 교감한다

입력
2023.11.15 04:30
27면

식물

편집자주

사람에게 따뜻함을 주는 반려동물부터 지구의 생물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정보를 소개한다.

영화 '레옹' 포스터. ㈜제인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영화 '레옹' 포스터. ㈜제인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얼마 전부터 집에서 기르는 호접란이 잎 사이로 삐죽 꽃대를 내기 시작했다. 2년 전쯤 지인으로부터 꽃이 핀 상태로 선물받은 것인데, 꽃이 진 이후 잎만 남아 조금씩 자라더니 마침내 꽃이 피려 하는 것이다. 두 달은 지나야 피겠지만 과연 몇 송이가 될지 눈길로 쓰다듬으며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바로 옆 둥근잎꿩의비름 화분에서는 분홍색 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20여 년 전 평창에서 야생화 농장을 하던 분이 작은 화분에 심어서 주신 것인데 집 안에서도 아주 잘 자라고 있다. 가끔씩 무심하여 몇 주간 물 주기를 잊었던 적도 있었지만 잘 자라서 이제 매년 꽃을 피우며 즐거움을 주고 있다. 원래 여름에 꽃이 피는 식물이라 앞으로 추워질 베란다에서 안방 창가 쪽으로 옮겨 주었다.

이 외에도 들인 지 10년은 족히 넘은 넉줄고사리와 석곡, 무늬인도고무나무도 있는데, 여러 번 이사를 하는 동안에도 늘 함께해서 이제는 가족이 되었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느껴지는 어색함과 짐 정리 이후에도 남아있는 어수선함은 거실 창가에 식물 가족들의 자리를 잡아 주면 비로소 친근한 공간으로 바뀐다.

반려동물처럼 요즘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되고 있다. 동물처럼 눈을 맞추거나 체온을 느낄 수 없는 식물에 교감이라는 전제가 필요한 반려의 개념은 맞는 것일까.

영화 '레옹(1994)'에는 주인공 레옹이 '아글라오네마'라는 식물을 제일 친한 친구라 부르며 정성스럽게 기르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레옹이 죽고 홀로 남은 마틸다는 남겨진 화분에서 죽은 레옹과 살아남은 자신이 투영되어 있음을 느끼고 정원에 심어 주는 영화 속 마지막 장면은 교감과 치유의 상징이 되었다. 또 다른 영화 '라자르 선생님(2011)' 속 짧은 장면에 등장시킨 식물을 통해 감독이 의도한 바도 교감이지 않았을까. 교실에서 목을 매고 자살한 담임 선생님이 창가에서 기르던 화분 속 '아프리칸바이올렛'은 작고 여린 식물이지만 정성스럽게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 주면 계속해서 꽃이 피는 강한 생명력을 지닌 식물이다. 담임의 자살을 목격하면서 생긴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보살핌이 필요했던 아이들처럼 말이다. '나비가 되어 날아갈 때까지 애벌레를 품어주는 나무가 될게.' 마지막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준 라자르의 말에 누구나 울컥하지만 자신도 가족을 잃은 슬픔을 치유받는다.

꽃을 보면 짓게 되는 '듀센의 미소(Duchenne smile)'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식물도 교감할 수 있는 생명체임은 틀림없다.


서효원 식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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