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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개파, 무대 잃은 개그우먼들에게 판 깔아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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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개파’ 판 깔아놓고 무릎 부상으로 좌초 위기
리아킴 출연으로 생각도 못한 반전 만들어
“애초 가진 것 없는 내가 여기까지 온 건
포기하고 싶을 때도 문을 두드린 덕분이다”
‘엔조이커플’을 대중에 새롭게 각인시킨 콘텐츠는 단연 ‘스트릿개그우먼파이터(스개파)’ 시리즈다. 2년 전 ‘스개파’ 시즌1이 시작이다. ‘스트릿우먼파이터(스우파)’를 패러디한 콘텐츠다.
‘스우파’는 뮤지션 뒤에 가려져있던 댄서들을 전면에 내세워 재조명한 방송. ‘스개파’는 무대가 없어진 개그우먼들에게 판을 벌여준 방송이다. 기획 취지도, 내용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춤과 개그, 연기를 넘나든 개그우먼들의 끼에 힘입어 ‘스우파’ 못지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올해도 ‘스우파’ 시즌2가 시작되자마자 ‘스개파’ 시즌2를 준비했다. 역시 성공. 조회수는 매 에피소드마다 300만~400만 건에 달했다.
-‘스개파’ 시즌1을 시도할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2020년 ‘개그콘서트’까지) 잇따라 코미디 프로그램이 없어져서 주변에 나보다 재능 있고 끼 많은 개그맨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유튜브가 잘 될수록 ‘언젠가는 내가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 저한테 콩 반쪽을 나눠줬던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보답도 하고 싶었죠. 그러던 중에 ‘스우파’ 첫 방송을 봤는데 ‘이거다’ 싶더라고요. 개그우먼들을 모아서 이걸 패러디하면 잘 될 것 같은 감이 왔죠.”
-수익을 생각하지 않고 만들었다고요.
“제작비가 생각보다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한 번 촬영할 때 1,500만~2,000만 원 정도였죠. 사용된 음악들의 저작권료도 지불해야 하고요. 두 번 촬영해서 에피소드 4개를 만들었으니까 총 제작비는 4,000만 원 가까이 든 프로젝트였어요. 제작 기간 동안 다른 콘텐츠는 만들지 못하니 그 기회비용까지 생각하면 실질적으론 1억 원 정도를 투자하는 셈이었죠. 괜히 ‘돈 벌려고 했다’는 오해나 논란을 사기 싫어서 PPL 같은 광고도 받지 않았고요.”
-큰 결심이네요.
“동료들에게 가진 마음의 짐이 있었는데도 늘 미루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게 터닝포인트 중 하나가 됐어요. 병환을 확인한 지 2주 만에 돌아가셨거든요. 그때까지 제가 일하고 돈을 버는 목적은 효도였어요. 이제 막 입에 풀칠하기 시작했고 곧 효도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죠. 그때 번아웃이 심하게 왔어요.”
-충격이 컸겠네요.
“일을 모두 접을 생각도 했죠. ‘이렇게 열심히 살면 뭐하나’ 싶었어요. 효도를 미뤄온 죄책감이 컸죠. 그래도 그 시기를 버틴 게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것 덕분이었어요.”
그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건 촬영 때문에 출장을 떠나는 날이었다. 집을 나서면서 괜히 한 번 아버지를 돌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다시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데 왠지 모르게 사랑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말했다. “아빠, 사랑해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도 짐짓 놀란 것 같더니 이내 답했다. “나도 사랑해.” 그게 아버지와 주고받은 마지막 대화였다.
-자신에겐 어떤 의미였나요.
“한동안 영상을 올리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방송을 재개하면서 구독자들에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그러니 여러분도 지금 부모님께 꼭 사랑한다고 말하시라. 그게 나를 버티게 했다’고. ‘이 영상 덕분에 엄마, 아빠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했다’는 댓글들이 달렸어요. 그걸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어요. ‘나도 영상으로 좋은 영향을 줄 수가 있구나’라고 느끼기도 했죠. 영상으로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시도를 더 해봐야겠다 싶었어요. ‘스개파’를 해볼 힘을 얻었죠.”
그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자신을 “스개파에 던졌다”. 고단했던 시절 자신이 기댔던 개그우먼들이 이번엔 아버지를 떠나 보내고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그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했다. 그가 말했다. “정말 힘든 상황에 닥치거나, 큰 실패를 겪으면 강제로 나를 좋은 사람들 속에 던져버리는 것도 방법이에요. 나의 그 좋은 사람들이 결국 저를 치료해준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스개파’는 대성공을 거뒀다. 그저 웃기기만 한 콘텐츠가 아니라서다. 누구보다 출연한 개그우먼들이 그걸 증명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촬영하러 왔다가 동료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안고 갑니다”(홍윤화), “살아있다는 걸 느꼈어요”(김혜선), “저희 끼 많은 개그우먼들 많이 써주세요”(김진주), “무대가 없어져서 선ㆍ후배들을 만나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열정만 있다면 어디든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홍현희).
‘스개파’를 본 시청자들도 마음을 포갰다. “판 깔아주면 이렇게나 잘들 하시는데, 정작 메인 방송이 없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분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어서 생기기를.” “매화마다 소름 끼치게 높은 싱크로율에 너무 놀랐어요. 이런 능력을 가진 개그우먼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게 너무 아쉽네요.”
그래도 ‘스개파’ 시즌2는 안 할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남편 민수씨가 “한 번이면 족하다”며 말렸다. 그런데 ‘스우파’ 시즌2가 시작하자마자 동료 개그우먼들이 라라씨에게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다. “언니, 저 댄서 아무개 닮았는데 그 캐릭터 준비하면 될까요?” “의상은 이걸로 하면 되겠죠?” “라라야, 나 완전 아무개 댄서 같지 않냐?” 그는 다시 결심했다. 남편과 회사를 설득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할게.”
이번에도 ‘대박’ 예감. 에피소드 1이 나가자마자 SKT에서 제작비를 지원하겠다고 연락해왔다. 그런데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 이번엔 라라씨가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그는 시즌2에서 댄서 리아킴을 패러디한 ‘늴리리아킴’을 맡은 터였다. 얼핏 보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비슷한 분장과 가발, 의상으로 첫 화부터 화제였다. 힘차게 노만 저어가면 되는데, 두 번째 촬영을 앞두고 왼쪽 무릎 부상을 당한 것이다.
-어쩌다가 다친 건가요.
“엠넷에서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 2’를 하는데, 홍보영상 요청이 들어왔어요. 가서 또 너무 열심히 춤을 춘 거죠. 후반에 체력이 떨어져서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어요. 왼 무릎 쪽에서 뚝 끊어지는 느낌이 났죠. 응급실에 실려갔어요. 슬개골이 탈구된 거였어요.”
-정말 막막했겠어요.
“방송도 방송이지만, 준비한 걸 보여줄 수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제가 지닌 재능 중 그나마 제일 낫다고 생각한 게 춤이었어요. 그래서 ‘스우파’ 시즌2의 ‘스모크(Smoke)’를 정말 잘 추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판을 깔아놓고 나만 못하게 된 거죠.”
-하지만 이번에도 거기서 멈추지 않았죠.
“대책을 고민하는데, 남편이 아이디어를 냈어요. ‘아예 댄서가 늴리리아킴 대역을 하면 어때?’ 제가 ‘오, 그것도 재미있겠다’ 하다가 ‘아니, 이왕이면 리아킴을 섭외해 보면 어떨까’라고 한 거죠. 그러면서도 둘 다 ‘에이 근데 가능하겠어’ ‘안 되지. 지금 한창 방송 중인데 어떻게 올 수 있겠어’ ‘맞아, 절대 못 오지’라고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저는 애초부터 가진 게 너무 없는 사람이었잖아요. 그 덕분에 주위에 늘 도움을 청하면서 살았어요. 장학금 받을 길이 없으면 학교 학생지원센터 문을 두드려서 장학제도 담당 교직원 선생님을 붙잡고 ‘제 상황이 이런데요, 저 같은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은 없을까요’라며 매달렸죠. 밑져야 본전이거든요. 그렇게 도움을 청하면 사람들은 늘 지혜를 나눠줬어요. 말도 안 되게 문이 열리기도 하고요. 물론 아닐 때도 많지만. 그래서 이번에도 두드렸죠.”
그는 리아킴에게 장문의 DM(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냈다. 하루 만에 답이 왔다. 리아킴의 메시지는 간결했다. “네, 갈게요.”
-어땠나요.
“기다리는 동안 기대도 안 했거든요. 심지어 안 될 경우에 대비해서 다른 댄서를 구해야 하나 고민도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답이 와서 너무 신났죠. ‘이게 되는구나’ 싶어서요.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스개파 시리즈가 자신에게 준 건 뭘까요.
“사람들의 간절함과 열정이 어우러졌을 때 나오는 엄청난 시너지, 기적 같은 시너지를 경험했어요. 과정부터 정말 좋았죠. 하기까지가 어려워서 그렇지, 우리가 일단 모여서 시작하면 너무너무 재미있거든요. 처음부터 이건 잘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스개파’를 하고 나니까 주위에서 많이 묻거든요. 어디서 그렇게 똑같은 사람들을 찾았냐고. 그런데 개그우먼이 그만큼 많아요. 끼 많고 재능 있는데도 빛을 보지 못하거나 무대에 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죠.”
-유튜브를 하면서 그간 올린 콘텐츠 중 예상과 달리 반응 안 좋거나 실패한 콘텐츠도 있겠죠.
“그럼요. 잘 된 콘텐츠보다 그렇지 않은 콘텐츠가 더 많아요. 다만, 망한 콘텐츠에서도 배울 수 있어요. 그 실패들 덕분에 ‘감’이란 게 생겼죠.”
그와 손민수씨는 케이블 채널 ENA가 내년 초 방송할 크리에이터 양성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도 구독왕’의 멘토 겸 심사위원을 맡았다. 그는 말했다. “크리에이터들에게도 성공의 경험은 별 도움이 안 될 거예요. 오히려 실패의 경험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일 거라고 생각해요. 실패의 경험이 없다면 어떻게 멘토를 할 수 있겠어요.”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크고 작은 실패를 바탕으로 임라라만의 언어로 ‘실패’를 정의한다면 뭘까요.
“실패란, 더 큰 실패를 막기 위한 아픈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너무 아프죠. ‘이 실패를 경험해야 더 큰 성공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저는 더 큰 성공을 안 하고 말지 실패는 경험하고 싶지 않아요. 그만큼 고통스러웠어요. 그런데 실패는 필요하더라고요. 더 큰 실패를 막아주니까요.”
-그 실패들이 준 삶의 도가 있나요.
“적당함의 지혜요. 적당한 거리든, 적당한 정도든. ‘중용’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아직 그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고요. 예를 들어, 저는 입시가 인생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어요. 내 전부가 아니고 그럴 수 없는데도 전부인 것처럼 전력질주한 거죠. 살면서 대부분 그랬어요. 인생에서 적당함이 없이 모든 일을 죽어라 열심히 한 거예요. 그게 저를 너무 힘들게 했어요. 그러니 실패를 하면 그 실패마저 전부처럼 느껴져서 고통스러웠죠. 이제는 적당하게 살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더 잘되더라고요. (미소)”
현실의 어려움과 상대적 박탈감으로 힘들었던 대학 시절, 그의 마음에 불을 켜준 한마디가 있었다. 학생처 학생지원팀에 찾아가 동문 선배이자 말단 교직원이었던 김지은씨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두 사람은 김씨가 학교를 그만둔 지금도 연락하며 지내는 사이다. “선생님, 저 인생이 너무 힘들어요. 이렇게 먼 길을 돌아왔는데 지금도 잘하는 게 없어요. 그만 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의 얘기를 듣던 김씨가 말했다.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 있어. Everything counts. 지금의 이 모든 시간이 축적돼서 언젠가 보상해 주는 날이 올 거야.” 그는 푸념했다. “선생님, 대체 그런 날이 언제 올까요?”
그도 이젠 알 것이다. 그 답이 그가 만들어온 ‘라라랜드’에 있다는 것을.
역사가 승자의 서사이듯, 우리의 이력서도 성공만을 적습니다. 그러나 성공이라는 열매를 하나 맺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패합니까. ‘삶도-시즌2’는 실패를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실패의 정의를 새로이 써보자는 의도입니다. 우리는 모두 실패합니다. 지금도 무수히 실패하는 중입니다. 나의 실패와 당신의 실패는, 그래서 별것 아니면서도 특별합니다. 그 실패의 시간들을 엮는 ‘실패연대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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