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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모든 노예가 해방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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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식민지 브라질의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 후손을 ‘퀼롬볼라(quilombola, 또는 maroons)’라 한다. 대농장 노예로 억압당하던 그들이 탈출 후 동북부 산림지대에 정착해 만든 독립적인 자유-자치 커뮤니티는 ‘퀼롬보스(quilombos)’다. 식민지 정부는 퀼롬보스의 퀼롬볼라들을 소탕하기 위해 끊임없이 군대를 파견했다. 야자수(palm)가 우거진 지역이어서 포르투갈인들이 ‘팔마레스(Palmares)’라 부른 ‘퀼롬보 도스 팔마레스(quilombo dos Palmares, 팔마레스의 퀼롬보)’는 17세기 전성기엔 11개 커뮤니티 연합체로 주민 수만 3만 명이 넘던 실질적인 왕국이었다.
줌비(Zumbi, 1655~1695.11.20)는 팔마레스의 마지막 지도자이자 퀼롬볼라 저항운동의 상징적 전사다. 아프리카 콩고 왕족의 후손이라 알려진 줌비는 팔마레스에서 태어나 6세 무렵 포르투갈 군대에 붙들려 백인 선교사의 노예 겸 시종으로 성장했다. 포르투갈어와 라틴어를 익히고 종교 전례 교육을 받은 그는 15세 때인 1670년 탈출해 고향 팔마레스로 복귀, 퀼롬볼라들의 아프리카 전통 무예 카포에이라(capoeira)를 익혀, 포르투갈 군대와의 전투에서 활약했다.
1678년 포르투갈 총독이 팔마레스 지도자 강가 줌바(Ganga Zumba)에게 자유민 신분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복종을 요구했다. 강가 줌바는 타협안에 동조했지만, 팔마레스군 지도자였던 줌비는 ‘식민지의 모든 노예가 해방될 때까지 타협은 없다’며 맞섰다. 1680년 새 왕이 된 그는 1695년 포르투갈 군대에 팔마레스가 무너질 때까지 저항을 지속하다 포로로 처형당한 뒤 수도 중앙광장에 효수됐다. 퀼롬볼라들의 믿음, 즉 줌비가 반인반신 불사의 존재라는 믿음을 꺾기 위한 조치였다.
브라질 노예제는 1850년에야 폐지됐다. 자유의 투사이자 영웅인 그의 처형일(11월 20일)은 1960년대 이래 브라질 ‘흑인 의식의 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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