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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헌 옷 수거함, 그 웅장함의 실상

입력
2023.11.04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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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헌 옷 수거함에 들어있는 옷과 운동화를 꺼내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헌 옷 수거함에 들어있는 옷과 운동화를 꺼내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수익금 일부는 소외된 이웃을 돕는 데 쓰입니다'. 이런 문구가 적힌 초록색 헌 옷 수거함에 옷을 넣고 나면 가슴이 살짝 웅장해진다. 옷을 버리지 않아 친환경에 일조했고 재활용 수익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뿌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실상은 어떨까. 수거된 헌 옷 중 국내 빈티지 매장 등으로 유통되는 분량은 5% 정도다. 나머지 95%는 케냐 등 개발도상국으로 죄다 넘겨진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기콤바시장에서 강둑을 따라 걷다 보면 한국에서 수출된 헌 옷 등이 길바닥 무덤처럼 쌓여 버려져 있다고 한다. 한국의 섬유 폐기물이 인도양을 건너 아프리카 대륙으로 옮겨진 것이다.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이소연 지음·돌고래 발행·326쪽·1만7,000원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이소연 지음·돌고래 발행·326쪽·1만7,000원

책은 옷 재활용과 친환경 제작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조목조목 고발한다. 친환경 면 100%의 목화를 재배하기 위해 인체와 땅에 치명적인 살충제가 미국에서 연간 1,000톤 이상씩 쓰이고, 버려진 페트병으로 환경영향을 줄이겠다며 만들어진 '에코 프렌들리'도 신화다. 시중에 나온 친환경 의류 소재 성분 70% 이상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합성섬유다.

지구에 '착한' 옷은 없다. 그래서 저자는 환경 보호를 위해 옷 생산과 소비의 자제를 주장한다. 폐페트병으로 어떻게 옷을 만들까가 아니라 옷장에 쌓아둔 옷을 버리지 않고 오래 입을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패션디자이너를 꿈꿨던 그는 2019년부터 새 옷을 사지 않는다. 그가 제시한 새 옷을 사지 않고 '새 옷'을 입는 법은 다양하다. 사고 싶은 옷이 있으면 중고 플랫폼부터 뒤지면 된다. 옷과 옷 바꾸기도 대안 쇼핑이다. 옷, 즉 의식주에 대한 고민은 결국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 설정이기도 하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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